농민 속여 5억 상당 가로챈 40대 수사
유명 식품업체 계열사 임원이 농민들을 속여 허위 납품중개 계약을 맺고 5억원 상당의 천일염을 가로챈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그에게 수천 만원에 이르는 성접대를 하고 특산물 상납까지 해야 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H식품업체 계열사 U업체 영업본부장 조모(43)씨를 사기와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해 7월 전남 신안군 비금도의 천일염 생산 농민 안모(40)씨 등 20여명과 계약을 맺었다. U업체가 ‘안씨 등이 생산한 천일염의 납품을 2년간 중개한다’는 내용이었다. 조씨는 올해 2월 이들에게 ‘S업체에 5억원을 받고 납품할 천일염 2만5,000포대를 3월18일까지 준비하라’는 공문서를 보냈다. 농민들은 약속된 날짜에 맞춰 천일염을 출하, 조씨가 지정한 경기 남양주의 한 창고로 보냈다.
그러나 일주일 뒤 주겠다던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고, 결국 지난달 22일 돈을 받기 위해 S업체를 찾은 농민들은 회사측으로부터 “납품 계약을 맺은 사실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씨에게 사기 당한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경찰 조사결과 조씨가 다닌 U업체는 쌀 가공업에 주력하기 위해 식품 중개사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S업체에 근무했던 조씨는 전 동료직원의 직함을 이용해 S사 납품계약서를 허위로 만들어 농민들을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농민들이 천일염을 납품한 날 회사를 그만뒀다.
조씨는 이렇게 가로 챈 최상급 천일염을 팔려 했지만 거래업자들과 가격 합의를 못해 한 달 넘게 습기 찬 창고에 방치했다. 그 동안 천일염은 절반 가량 유실됐고 나머지 소금의 상품가치도 급격히 떨어져 농민들은 4억여원의 피해를 입었다.
조씨는 또 납품을 미끼로 농민들에게 수시로 성접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 안씨가 공개한 신용카드 결제내역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7회에 걸쳐 서울 강남과 전남 목포 등에서 2,000여만원에 이르는 성접대를 받았다. 안씨는 “조씨가 노골적으로 ‘잘 아는 술집에 가자’며 강남 최고급 ‘풀살롱’에 데려가 술값과 성매매로 한 번에 400여만원을 썼다”고 털어놨다. 그는 “결제는 아내의 신용카드를 사용했다”며 “아내에겐 ‘먹고 살려고 어쩔 수 없이 성접대를 하지만 당신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며 울먹였다.
조씨는 농민들에게 지역 특산물까지 상납 받았다. 피해 농민들이 적은 상납 목록에 따르면 자연산 갑오징어 18마리(36만원), 시금치 섬초 30㎏(36만원), 자연산 장어 15㎏(39만원)을 비롯해 쌀 고구마 녹두 등 시가 200만원이 넘는 특산물을 수시로 조씨에게 상납했다. 조씨는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에게도 특산물을 바치라고 요구해 농민들은 천일염 15가마를 보냈다. 피해 농민들은 “살기 위해 모든 걸 착취당했다”며 “무엇보다 내 피 같은 소금을 잃어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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