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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금융사고에도 식지않는 인기... ABCP의 두얼굴

입력
2014.05.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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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그룹이 발행한 ABCP 등에 투자했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3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추가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동양그룹이 발행한 ABCP 등에 투자했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3월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추가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제공

자산 담보+우량회사 보증 금융회사, 이중 안전장치 유혹 단기투자로 年 3-5%대 수익 매력 작년 CP발행의 62%나 차지 금융사 특정금전신탁으로 판매 투자 책임은 모두 투자자 몫이지만 상품 설명ㆍ위험 고지 제대로 안해 신용평가사, 보증회사 신용등급도 수익 위해 뻥튀기 평가 다반사 꼼꼼히 따져 보고 투자해야

“3개월만 투자해도 4%대 이자를 챙길 수 있습니다.”

A은행 PB센터 고객인 김모(48)씨는 3월 만기(2년)가 돌아온 예금 2억원을 찾은 후 재예치를 하는 대신 3개월에 연 4.9%의 이자를 주는 신탁상품을 선택했다. SK건설의 인천 용현동 개발사업을 위해 발행된 회사채에 IBK투자증권이 보증을 선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신용등급 A2)에 투자하는 상품이었다. PB센터 직원은 “ABCP는 증권사가 투자적격등급을 확보하지 않은 회사 어음 등은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매력 있어 아는 사람들만 투자한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곧바로 2억원 모두를 투자했다. 실제 지난달 28일 200억원 한도로 출시된 이 상품은 판매 이틀 만에 모두 동이 났다. 김씨는 “PB에서 권해준 상품이니까 은행 예금처럼 안전하면서도 단기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일석이조 상품 아니겠느냐”며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잇단 사고에도 식지 않는 인기

ABCP가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한 건 지난 해 10월 동양시멘트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다. 동양그룹이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발행했던 ABCP 투자자 4,700여명의 투자금이 꽁꽁 묶이게 된 것. 그 금액만 1,500억원이 훨씬 넘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올 3월 KT 자회사인 KT ENS가 직원 대출사기 사건 이후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또 다시 불똥은 ABCP 투자자들에게 튀었다. 역시 1,800억원이 넘는 금액을 모두 날릴 처지에 내몰렸다.

이렇게 사고가 끊이질 않는데도 요즘 ABCP는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은 상품이다. 한국은행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ABCP는 지난해 13조8,000억원이 순발행되면서 총 잔액이 78조원을 돌파했다. 2011년 순발행액이 2조8,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 불어난 것이다. 특히 ABCP는 2011년에는 전체 기업어음(CP) 발행의 절반에 불과했으나 작년에는 62.0%로 상승할 정도로 CP 내에서도 높은 주가를 형성하고 있다.

올해 역시 ABCP 투자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 특히 은행 정기예금을 기초로 만든 ABCP의 경우 최근 두 달 사이 5조원 이상 팔릴 정도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다.

ABCP는 어떤 상품이길래

ABCP는 유동화전문회사인 특수목적회사(SPC)가 매출채권, 신용부도스와프(CDS), 정기예금,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기초자산을 담보로 발행한 CP다. 예컨대 매출채권 1,000억원이 있는 기업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를 담보로 CP를 발행하는 식이다. 만기가 되면 ABCP를 재발행해 돌려막기를 한다. KT ENS도 신재생에너지사업을 진행하면서 SPC를 세운 후 사업자금을 위해 사업부지 등을 담보로 ABCP를 발행했고, KT ENS는 시공사로서 ABCP에 대해 ‘신용보강’을 해줬다. 건설사들이 시행사의 자금조달을 지급보증하는 식이었고, 신용도가 높은 KT ENS 때문에 금리를 낮출 수 있었다. 다만 KT ENS는 사업이 잘 되면 건설비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건설비를 잃고, 신용보강을 해 준 대출금을 물어야 하는 구조였다.

상품마다 다르지만 금융사들이 ABCP를 판매하면서 통상 발행금액의 0.1%포인트 안팎을 수수료로 챙길 수 있다. 투자자들은 주로 단기 상품인 이 ABCP로 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챙길 수 있다. 수익률은 ABCP의 신용등급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연 3%대 중반부터 투기등급 전 단계(A3)의 경우 연 5%대까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형일 하나은행 PB본부장은 “금리가 연 2%대로 낮아지면서 고객들은 0.1%포인트에 선호도가 엇갈릴 정도로 민감하다”며 “최근 시장에 나오는 ABCP 중 상당수는 신용도가 높지 않아 예금상품보다 높은 금리를 주고 있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책임은 투자자가

ABCP는 대부분 특정금전신탁으로 팔린다. 특금은 자금을 맡긴 고객이 지정하는 방법에 따라 금융사가 운용해 수익을 돌려주는데, 고객 상당수가 투자 식견이 높지 않아 금융사가 투자할 대상과 금리, 만기 등을 설계해놓고 고객 동의만 받는 게 보통이다. 충분한 상품 설명과 위험고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늘 상존한다.

또 주요 상품 내용을 공시하지 않는 사모방식을 쓰는 경우도 많아 ‘묻지마 투자’의 위험도 늘 따른다. 실제 최근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국은행 서울지점 위안화 예금을 기초로 발행되는 ABCP의 경우 50인 미만 소수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사모펀드 방식으로 모집ㆍ판매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실제 상품을 판매할 때 중국의 불투명한 금융시스템이 예기치 못한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지는 않는다”며 “아무래도 공시 정보만큼 투명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특금 투자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투자자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운용방식에 따라서는 중도 해지가 어려운 경우도 있고, 투자금이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호 대상도 아니다. 원칙적으로 투자 구조를 본인이 직접적으로 설계하는 것인 만큼 손실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하는 구조다.

하지만 상당수 투자자들은 이점을 간과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ABCP 기초자산이 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지고 신용보강 회사가 부도를 내 원금을 몽땅 날릴 수도 있지만, 판매사들은 이 사실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정기예금이 없어 단기자금을 손쉽게 모집할 수 없는 증권사들이 최근 기업들이 발행하는 사모채권이나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을 받아와 신용보강을 거쳐 ABCP로 발행하는 것도 이런 채무불이행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손쉬운 먹거리인 ABCP 등 유동화 업무에 집중하고 있으나 ABCP가 시장에서 제대로 매각 또는 매각되지 않으면 곧바로 유동성 위기로 연결될 수도 있는 만큼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ABCP 신용도도 믿을 수 없어

최근 ABCP 신용도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ABCP는 발행하면서 신용보강이 이뤄지면서 금리가 형성된다. 쉽게 말해 대출금을 갚아주겠다며 발행 금리를 낮추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ABCP 신용등급은 투자자들이 손쉽게 안정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당수 신용평가사들이 이 신용등급을 ‘뻥튀기’로 내놓고 있다는 게 문제다. 높은 등급 만이 아니라 상황 변화에 따른 등급 하향도 매우 늦게 이뤄진다. ABCP의 신용등급은 신용보강을 하는 회사의 신용등급에 따라 좌우되는데, 실제 KT ENS의 경우도 해당회사의 재무상태보다는 모기업인 KT의 신용도 때문에 높은 신용등급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문제가 터지자 KT가 책임을 지지 않았고 그제서야 KT 자회사들의 신용등급 하향 검토에 나섰을 정도다. 실제 한국기업평가는 29일 KT 계열사 4곳의 등급을 내렸다. 신평사들은 신용등급을 개별 회사의 상환 능력과 외부지원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고 하면서도 각각 어느 정도 비율로 반영됐는지 조차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후한 평가는 결국 금전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신평사 수입의 대부분이 기업을 평가하면서 제공된 수수료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혁재 미래에셋자산운용 연구원은 “글로벌 신평사는 투자자에게 보고서를 판매하는 등 수익구조가 평가를 하는 회사에 의존하지 않다 보니 국내 신평사보다 평가의 독립성이 유지되고 있다”며 “수입원 다변화와 함께 기업분석 시 신평사들끼리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관행처럼 해당회사에 평가결과를 알려주는 행태를 줄이면 보다 투명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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