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홍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ㆍ전국국공립대학교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
1980년대 대학은 대학자치의 확보와 대학민주화 과제의 달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사회민주화와 더불어 대학은 교수협의회(교수회)를 만들고 총장직선제를 실시함으로써 형식적이나마 헌법이 보장한 학문의 자유와 대학자치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이전과는 다른 흐름이 고등교육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1995년 5ㆍ31교육정책이라 불리는 신자유주의 고등교육정책이 이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책은 국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인적 경쟁력이 앞서야 하고 인적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대학의 경쟁력이 증진되어야 한다고 주장되었다.
기업의 입장에서 교육사업은 매력적인 시장이다. 전세계 교육사업의 시장규모는 2조 달러를 넘어 세계자동차 사업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지어 굴뚝 없이 최고의 수익률을 낼 수 있는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1979년 이후 현재까지 영국정부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원칙을 기반으로 고등교육의 구조를 변경시켰다. 공공부문인 고등교육영역을 시장논리에 따라 사유화시켰다. 구조조정을 위해 대학을 평가하고 평가에 따른 연봉제를 실시하여 저임금정책을 고착시켰다.
이런 시도는 영국에서 시작하여 미국, 일본, 우리나라 그리고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에 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과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세계체제를 통해 개별국가에 강요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부도 이러한 정책에 따라 고등교육을 시장으로, 대학을 기업으로 변질시키는 작업을 진행시켰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설립준칙주의는 이러한 흐름이 구체화된 정책이었다. 대학간 경쟁을 촉발시키기 위해서 고등교육시장에의 자유로운 진출입을 허용하고 인위적인 경쟁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정책은 대학의 공공성이 취약하고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실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부실부패 사립대학의 양산과 고등교육의 공급과잉 문제를 발생시켰다. 많은 대학에서 분규와 갈등이 벌어졌다.
이러한 정책실패로 고등교육정책은 빠르게 정원감축정책으로 돌아서게 된다. 지난 4월 30일 국회 교문위원회 소속 김희정의원이 발의한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이하 ‘법률안’으로 약칭)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법률안은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 법률안은 전체 대학을 평가해서 강제로 정원을 감축하고 퇴출시키면 고등교육의 질적 향상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다. 사립대학위주의 고등교육체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단선적 논리로는 고등교육을 혼란에 빠뜨리면 빠뜨렸지 결코 고등교육을 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없다.
구조개혁이란 양적 감축을 넘어 구조의 질적 변화를 전제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 고등교육구조의 현황, 문제점과 개혁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문제는 전체 고등교육기관의 87%가 사립이라는 점,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점, 고등교육의 재정공공성이 취약하여 교육경비가 학생에 전가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질적 개혁을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법률안이나 교육부 정책은 대학을 ‘최우수’ 대학부터 ‘매우 미흡’ 대학까지 5단계로 구분하여 등급화시키려 하고 있다. 서열화된 대학이 등급화되면 양극화의 길로 접어드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 경우 고등교육의 양극화는 사회적 양극화로 이어지고, 사회적 차별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법률안은 사립학교법인에 과도한 특혜를 인정하는 반공익적 문제가 있다. 따라서 즉시 폐기되어야 한다.
고등교육의 개혁은 국가가 공적 책무를 부담하는 공영형 대학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나아가 학문의 자유, 대학자치를 보장하고 학생의 인권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의 구성원들과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고등교육개혁의 방향을 정할 필요가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