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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외도에 복수하고자 재클린도 숱한 염문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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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외도에 복수하고자 재클린도 숱한 염문 뿌렸다"

입력
2014.05.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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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F.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여사의 전기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격렬한 꿈 너머의 삶> 표지
존 F.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여사의 전기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격렬한 꿈 너머의 삶> 표지

존 F.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여사가 ‘바람기’로 유명했던 남편 못지않게 화려한 남성편력의 소유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재클린의 외도 상대로는 로버트 케네디와 ‘테드’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에드워드 케네디 등 두 시동생을 비롯해 말런 브랜도, 윌리엄 홀든, 폴 뉴먼과 같은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이 거론됐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은 29일(현지시간) 출간되는 재클린의 전기<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격렬한 꿈 너머의 삶> (표지사진)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이 책을 공동 저술한 유명인사 전기작가 다윈 포터와 댄퍼스 프린스는 소설가 트루먼 카포티와 여동생 리 래지윌 등과 같은 가까운 지인들의 증언과 이전에 공개된 서신ㆍ전기 내용 등을 토대로 재클린의 남성편력을 소개했다.

작가들은 “재클린이 케네디와 결혼하기 전에도 많은 남성들과 연애를 즐겼으며 결혼 후에는 남편의 외도에 복수하는 차원에서 유명 배우와 밀회를 하는 등 숱한 염문을 뿌렸다”고 주장했다.

책 내용에 따르면 재클린은 열여덟 살 때인 1947년 사교계에 데뷔하면서부터 남자친구가 많았고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유학하던 시절에는 소설가 앙드레 말로 등 유명인사들과 데이트했다. 재클린은 숱한 구애자 가운데 케네디를 선택해 1953년 결혼했지만 남편의 끊이지 않는 외도로 상처를 입었고, 이를 되갚아주려고 당대 할리우드 스타였던 윌리엄 홀든과 일주일간 밀회를 떠나기도 했다.

남편의 외도와 두 차례 유산으로 한때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던 재클린은 1957년 말 첫 딸 캐롤라인, 이듬해 아들 존을 낳으며 활력을 되찾는 듯했지만 남성편력은 그치지 않았다. 영부인이 된 뒤인 1962년에는 피아트 창업자인 지아니 아그넬리와 이탈리아 남부로 긴 휴가를 떠났고, 학창 시절 흠모하던 상대로 당시 프랑스 문화부 장관을 맡고 있던 앙드레 말로와 다시 만나기도 했다.

1963년 남편이 암살된 뒤에는 시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전 상원의원과 연인관계를 유지하면서 말런 브랜도와도 사귀었으며, 프랭크 시나트라, 그레고리 펙, 워런 비티 등 스타들과도 만나는 등 연애를 즐겼다. 재클린은 로버트 케네디가 민주당 대선 경선 도전을 선언한 1968년에는 배우 폴 뉴먼과 하룻밤을 보내며 로버트를 지지해달라고 설득하기도 했다고 작가들은 주장했다.

재클린은 또한 로버트와 만나면서 테드 케네디와도 혼외관계를 이어갔고 로버트가 암살된 뒤에는 더 깊은 사이가 됐다. 테드는 재클린을 늘 사랑했으며 부인 조안이 재클린과 닮아 결혼했다고 작가들은 덧붙였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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