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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 찾아 희망의 음식 담아주는 ‘자장면 아저씨’

입력
2014.05.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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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현장을 찾아 무료 자장면으로 희망을 전하는 요리사 이찬래씨가 29일 서울 성내3동의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직접 만든 자장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재난 현장을 찾아 무료 자장면으로 희망을 전하는 요리사 이찬래씨가 29일 서울 성내3동의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직접 만든 자장면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마음껏 자장면 드시고 희망과 용기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29일 낮 12시 서울 성내3동 중화반점 ‘금보석’. 사장 겸 주방장인 이찬래(53)씨가 두꺼운 프라이팬에 연신 자장을 볶아냈다. 뜨거운 불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위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여기 자장면 곱빼기 두 개요.” 한 그릇을 완성, 소맷자락으로 얼굴의 땀을 훔쳐내기 무섭게 다음 주문이 밀려들었다. 한 60대 할아버지 손님은 “난 여기 자장면이 아니면 안 먹는다”며 “맛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주인장 성품이 일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신사는 조금 전 받아든 자장면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36년 경력의 베테랑 요리사인 이씨는 동네에서 ‘자장면 아저씨’로 통한다. 산지를 돌며 직접 구입한 식자재로 만든 자장면으로 유명한 맛집 사장이지만, 그는 이 별명을 19년째 몸소 실천해오고 있는 ‘자장 나눔 봉사’활동을 통해 얻었다.

이씨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자장면을 만들어 무료로 대접하는 ‘자장 나눔 봉사’를 하고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봉사를 해온 건 1995년 수원의 한 고아원에서 7살 꼬마 40명과의 만남이 그 계기가 됐다. 자장면 한 그릇에 마음을 연 아이들은 이씨에게 “아빠, 아빠”하며 생떼같이 매달렸다. 그 모습을 잊지 못한다는 이씨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을 뿐인데,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했다”며 “그때 본 아이들의 표정을 잊지 못해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한 달에 2번씩 지적장애인들을 위해 강동구의 시설을 돌며 자장면을 만든다. 중증지적장애인 500명이 생활하는 고덕2동의 우성원과 인연을 맺은 지는 10년째, 한센병 환자들이 거주하는 소록도 봉사도 6년째 진행 중이다. 이씨는 결식아동들에게도 자장면을 무료로 제공해오고 있다.

그런 이씨가 10여 년 전 강동구중식업연합회 소속 동료 요리사들과 의기투합하면서 자장 나눔 봉사는 또 하나의 천직이 됐다. 이들과 함께 태풍, 홍수 등 피해가 있는 재난 현장이면 빠짐없이 찾아가 나눔 봉사를 펼쳤다. 2007년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당시 주민들에게 자장면 6,000그릇을,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 때는 백령도를 찾아 군인들에게 자장면 3,000그릇을 무상 제공했다. 이씨는 “80여명의 동료 요리사들은 재난이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달 2만원씩의 회비를 모아 봉사활동에 필요한 식자재비를 마련한다.

세월호 참사 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씨와 동료 요리사 11명은 지난 26~28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찾아 자장면 1,500그릇을 지원했다. 세월호 참사 초기였던 4월 28일부터 봉사를 하고 싶었지만, 현지 자원봉사자들이 많아 발길을 돌린 지 약 한 달 만에 ‘자장 나눔 봉사’가 시작됐다. 이씨는 “실종자 가족들이 식사 후 ‘잘 먹었다’고 하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며 “다만 사고해역 바지선에 올라 민간 잠수사들에게도 자장면을 대접하고 싶었는데 기상악화로 그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아쉬워했다. 이씨는 “이번 참사로 전남 영광의 고향 후배들의 자녀 2명, 안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의 친구 동생이 목숨을 잃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하루빨리 모든 실종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씨는 “중화요리 조리기구가 설치된 밥차인 ‘자장면 차’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며 “그 차를 몰고 더 많은 곳을 찾아가 더 많은 사람과 자장면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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