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하루 연장했지만 44% 그쳐… 정통성 흠집
예상대로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이집트 대통령 당선을 사실상 확정했지만 압델 파타 엘시시(60) 전 국방장관의 마음은 편치 않을 듯하다. 이집트 첫 민선 대통령이었던 무함마드 무르시를 쿠데타로 축출하며 ‘군부통치 회귀’라는 비난을 샀던 만큼 높은 투표율로 정통성을 확립하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29일(현지시간) 이집트 사법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26~28일 치러진 대선에서 엘시시가 93.3%를 득표했다고 보도했다. 엘시시의 유일한 경쟁 후보였던 함딘 사바히(60)는 무효표(3.7%)보다 적은 3.0%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엘시시 대선 캠프는 엘시시의 득표율을 93.4%, 또다른 사법당국 소식통은 89%라고 밝혔다. 내달 초로 예정된 공식 개표결과 발표에 앞선 잠정 집계 결과라 편차는 있지만 엘시시가 압승을 거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당초 이틀이던 투표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하는 강수까지 두고도 투표율은 44%에 그쳤다. 엘시시가 기대했던 80%는 물론이고 무르시가 당선됐던 2012년 대선 투표율 5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올해 1월 군부 권한을 도로 강화한 새 헌법안이 국민투표로 통과될 당시 투표율이 38.6%였던 점을 들어 엘시시 지지층이 국민의 40% 안팎에 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AP통신은 투표 첫날인 26일 15%대의 낮은 투표율에 당황한 당국이 둘째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투표 연장일인 셋째날엔 버스와 기차까지 동원해 투표를 독려했지만 투표율을 끌어올리는데 실패했다고 전했다. 특히 수도 카이로 등이 위치한 북동부 지역을 제외한 중남부 및 서부 지역은 투표율이 40% 미만에 머물렀다.
투표율이 저조한 이유로 일부 야권 세력의 투표 거부와 더불어 결과가 뻔한 투표이다보니 엘시시 지지층조차 투표장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엘시시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결과라는 관측도 많다.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무르시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언론ㆍ집회의 자유보다 국가 안정이 먼저”라고 공언하는 그를 두고 아랍의 봄을 통해 축출한 군부독재 정권이 부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는 것이다. 그가 유일한 공개 선거운동이었던 TV인터뷰에서 보여준 권위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이 대중적 호감을 잠식했다는 분석도 있다.
국가 주도적인 경제난 타개를 공약한 엘시시가 그에 필요한 대중동원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투표율이 낮았던 중남부 지역은 엘시시 경제개발 공약의 핵심 지역으로, 그는 오일머니가 풍부한 걸프왕국과 재외 이집트 기업들의 투자를 받아 이 지역의 사막지대를 개발하고 인구를 이주시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아랍의 봄과 무르시 축출 등 최근 이집트 정변의 근간엔 경제적 불만이 자리하고 있는 만큼 엘시시 정권이 단기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한편에선 엘시시가 이번 대선에서 얻은 표가 무르시보다 1,300만표 이상 많다는 점을 들어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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