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부터 써 온 시 여든다섯 편 담아
"타자에 대한 배려, 죽음이 곁에 있다는 데에서 비롯"
현대 문명·생태계 파괴 대한 쓴소리도
해설은 예술을 납작하게 만든다. 잔가지를 쳐내고 향을 날리고 잔상을 지우는 과정은 어떤 예술에게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이문재 시인의 언어에도 해설을 거부하는 표정이 뚜렷하다. 눈 깜짝할 사이 오감을 횡행하는 그의 시어는 문장을 죄 뜯어 해석하는 것보다 언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한바탕 춤을 추고 마는 게 더 어울릴 듯 하다.
이문재 시인이 10년 만에 시집을 냈다. 다섯 번째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에는 2005년부터 최근까지 쓴 시 여든 다섯 편이 들어 있다. 그는 오랫동안 시집을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시간이 없어서”라는 싱거운 대답을 내놨다. “시는 계속 써왔죠. 정리해서 하나로 엮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뿐입니다.” 그는 2005년 오래 몸담았던 ‘시사저널’에서 대학 강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10년 만에 한 데 모인 그의 시는 여전히 오래된 연못처럼 진하고 청년의 활보처럼 거침 없다.
“거기 연못 있느냐. /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꿈쩍 않는, 천 개의 달이 빠져 나와도 끄떡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도 있느냐. // 오늘도 거기 있어서 / 연의 씨앗을 연꽃이게 하고, 밤새 능수버들 늘어지게 하고, 올 여름에도 말간 소년 하나 끌어들일 참이냐.”(‘물의 결가부좌’)
“그래, 그리하여, 걷고 있는 것이냐, 걸어서 가고 있는 것이냐. / 길이, 저문 길이 네 몸 속으로 들어갔다가 이내 등 뒤로 풀려나가느냐. / 풍경과 네 몸 사이에 이제 아무것도 없느냐, 없어서 네가 길이 되었느냐. / 너는 네가 되었느냐, 네 몸이 너를 알아보더냐.”(‘땅 끝이 땅의 시작이다’)
마치 하나의 시처럼 비슷한 말투를 쓰는 두 편의 시를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번 시집에서 가장 훌륭한 시로 꼽았다. 그는 시의 화자에 대해 “전직이 인간이었던 신일지도 모른다”며 “아포리즘(잠언)적인 시가 받아 적게 하는 말이라면, 이런 시는 그 자체로 받아 적은 말”이라고 평했다.
시인의 가파른 연주에 홀려 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노래 소리는 줄어들고 사위가 어두워진다. 현대 문명과 도시 생태가 낳은 기형적 삶에 대해 시인은 전작에 이어 쓴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의 분리, 인간과 인간의 분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그 중에서도 시인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분리다.
“죽음이 죽었다. / 삶이 죽음을 인정하지 않아서 / 죽음이 삶을 간섭하지 못해서 // 삶이 죽음과 함께 살지 못해서 죽음이 죽음으로 살지 못했다. / 죽음이 죽지 못하고 죽어서 / 삶이 삶으로 살지 못했다.”(‘백서’)
죽음을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인은 “죽음이 삶을 삶답게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태어날 때 죽음도 함께 태어나는 거라고 꽤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습니다. 죽음이 우리 안, 또는 곁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삶은 지금과는 달라지겠죠.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그로부터 나올 겁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는 사회적 죽음도 포함돼 있다.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사고까지. 이 사회가 죽음의 의미를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이 죽었다는 표현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런 죽음이 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커진다면 우리 사회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시인은 여기서 조금 더 목소리를 높인다. 시집의 제목이자 아마 그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었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시에서 시인은 나무의 끄트머리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새순과 꽃과 열매를 보며 ‘맨 끝이 맨 앞’이라는 깨달음에 도달한다. 각성은 ‘지금 여기’로 무대를 옮겨 자신과 사회를 향한 외침으로 화한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분노도 /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