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제사회엔 요구하면서 유엔 해양법 미가입 2. 기후변화 대처 구경만 3. 정보수집 규제 지지부진 4. 관타나모 폐쇄도 안 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8일 이례적으로 미국이 처한 자기모순을 인정했다.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집권2기 외교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다. 미국의 모순은 국제사회를 향해 준수할 것을 요구하면서 막상 스스로는 지키지 못하는 사안들이다. 대표적으로 해양법, 기후변화, 관타나모수용소, 정보사찰 4가지가 제시됐다. 오바마는 “미국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원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며 미국이 처한 고민과 현실을 솔직히 털어놨다.
가장 큰 모순은 중국에 대해 남ㆍ동 중국해에서 항해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강조하는 미국이 항해의 자유를 규정한 유엔해양법에는 가입하지 않은 사실이다. 1982년 발효된 해양법은 세계 해양을 규율하는 법 체계로 162개국이 가입돼 있다. 미 국방부조차 중국을 견제할 법률 카드란 점에서 가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미 의회는 미국의 해양주권을 국제법에 맡길 수 없고, 해군 작전에도 장애가 된다며 30년째 해양법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과 남중국해 주변 국가들이 분쟁에 휘말릴 경우 미국이 개입할 명분은 많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바마는 “중국에 대해 해양법에 근거해 주변국과의 해양분쟁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집권 2기 외교정책 중 하나로 기후변화 대처를 주창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는 사안이다. 여론도 찬반으로 팽팽히 나뉘면서 관련 정책은 정치권에서 철저히 외면 받고 있다. 미국 보수진영은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의회는 관련 법안이나 국제사회의 기후변화협정 처리를 거부하고 있다. 이와 달리 미국은 대외적으로는 태풍과 쓰나미(지진해일) 등 세계 주요 재해지역에 군대를 파견하는 등 기후변화를 단순한 탄소가스 배출 규제가 아닌 국가안보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오바마는 “정치 지도자들이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른 나라에게 기후변화에 맞서 싸울 것을 요구할 수 없다”고 의회 지지를 요청했다.
오바마는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세 번째 모순으로 관타나모 수용소를 지목했다. 그는 “나도 미국의 예외주의를 믿지만 그것이 규범과 법률의 지배를 무시할 능력까지 부여하는 건 아니다”며 “미국 국경 밖 관나타모 수용소에 (인신을)무한정 억류하는 것은 미국의 가치와 법률 전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악관 고위인사는 이날 컨퍼런스콜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관타나모 수용소가 문을 열만큼 아프간 전쟁 종식을 앞두고 수용소 폐쇄를 위한 노력을 배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테러 용의점이 있는 수감자의 석방문제는 미 보수진영뿐 아니라 수감자와 관련된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있다. 오바마가 대외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의 증진을 천명하면서, 세계를 상대로 정보를 수집하고 시민을 사찰하는 것 역시 대표적 모순으로 꼽힌다. 오바마는 이럴 경우 세계의 많은 동반자들을 잃게 될 것이라며 정보수집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바마는 이날 연설에서 집권 2기 외교전략 가운데 미국이 세계를 주도할 3대 정책으로 사이버안보, 해양문제, 기후변화 3가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3가지 정책은 미국 스스로는 관련 국제규범이나 기준을 지키지 못하는 것들로서, 결국 모순의 정책들이란 지적을 받는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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