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9단 승단 경사 “웬만하면 다 9단…”겸손
KB리그 중위권 예상팀 감독·선수 친화력 무기로
초반부터 단독 선두에 “팀 잘하는 게 가장 기뻐”
KB리그 CJ E&M팀 한종진 감독(35)에게 최근 안팎으로 경사가 겹쳤다. CJ E&M이 리그 초반부터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고, 며칠 전에는 입단한 지 18년 만에 ‘바둑에 관해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입신’의 반열에 올랐다. 국내 65년째 프로 9단이다.
“잔치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축하인사에 “잔치는 무슨. 요즘 웬만하면 다 9단인데요, 밥이나 한 번 살게요”라며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쳤지만 얼굴에는 기쁜 표정이 완연했다. “그보다 바둑리그에서 우리 팀이 잘 나가고 있다는 게 더욱 기쁘죠. 어린 선수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해주고 있어요.”
CJ E&M은 당초 중위권 정도로 분류됐지만 예상을 깨고 개막전부터 연승 행진을 계속하더니 현재 3전 전승으로 8개 팀 중에서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1, 2라운드에서 신안천일염과 화성시코리요를 모두 4대 1로 격파했고 3라운드서 정관장을 3대 2로 이겼다. 정관장은 지난해 2위, 신안천일염은 3위를 차지했던 강팀으로 올해도 유력한 우승 후보들이다.
CJ E&M은 주장 강동윤(25)을 비롯, 이지현(22), 신진서(14), 박승화(25), 김진휘(18), 강승민(20), 설현준(15), 최정(18) 등 소속선수들의 평균연령이 20.8살로 KB리그 출전 8개 팀 가운데 가장 젊다.
리그 개막 전 선수선발식에서 한종진 감독이 상위 랭커들을 건너뛰고 계속 나이 어린 선수들을 호명하자 주위에서는 너무 모험이 아니냐며 수군댔지만 결과적으로 한감독의 승부수가 멋지게 성공했다. “지난 2년 동안의 감독 경험에 비춰볼 때 KB리그는 속기기전인데다 8개월 동안 계속되는 장기전이어서 일단 체력 면에서 젊은 선수들이 유리하다. 또 나이 어린 선수들은 시합을 통해서 계속 기량이 향상되기 때문에 초반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어도 일단 리그에 적응하면 중반 이후부터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이같은 예상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셈이다.
안성문 바둑리그전문기자는 CJ E&M의 강점으로 고른 전력을 들었다. 다른 팀은 대부분 주전선수 다섯 명 가운데 반드시 한 군데 정도는 구멍이 있기 마련인데 CJ E&M은 전혀 빈틈이 없다. 막내 신진서가 2전 전승을 거뒀고 강동윤, 이지현, 박승화, 김진휘 등 주전선수들이 2승1패로 고른 활약을 펼쳤다.
특히 올해는 예상 밖의 행운이 따랐다. KB리그 개막에 즈음해서 국가대표 상비군이 개편돼 맹훈련을 실시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CJ E&M이 상비군 훈련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됐다. KB리그 선수 5명, 퓨처스리거 3명 등 CJ E&M 소속선수 8명 가운데 무려 6명이나 국가대표 상비군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상비군에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수들을 깐깐하게 훈련시키고 컨디션 관리까지 해주니 감독이 따로 신경 쓸 일이 없다. 같은 KB리그 감독으로 상비군 코칭스태프에 참여하고 있는 김성룡 포스코켐텍 감독은 “한종진 감독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다. 우리 팀은 국가대표 상비군 선수가 주장인 조한승 한 명 밖에 없으므로 결국 나는 다른 팀 선수들을 매일 열심히 훈련시키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한감독은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상비군에서 알아서 선수들을 잘 관리해 주니 얼마나 좋으냐”며 “만일 CJ E&M이 KB리그에서 우승한다면 상비군 코칭스태프에 크게 한 턱 내야 할 것”이라며 웃었다.
한종진 감독의 또 하나 큰 장점은 엄청난 친화력이다. 바둑계 선후배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 8개팀 감독 중에서 가장 선수들과 호흡이 맞는 감독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KB리그 경기 때 CJ E&M 검토실은 항상 시끌벅적하다. 자기 팀 선수뿐 아니라 상대팀 선수까지 스스럼없이 CJ E&M 쪽으로 건너와 한감독과 함께 검토를 하곤 한다.
한종진 9단은 1979년 전남 여수 출생으로 1996년 6월 입단, 2000년 제10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서 준우승하며 바둑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2003년 제8회 삼성화재배 본선 16강에 올랐고, 2004년 제6회 농심배 대표선수로 출전해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그러나 솔직해 말해서 바둑 공부는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다. “일단 입단을 하고 보니 무척 홀가분했다. 바둑 공부가 너무 지겨워 아무 생각 없이 실컷 놀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청춘을 보냈다. 30세가 되던 2009년부터 자신이 공부한 허장회바둑도장에서 사범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자신의 새로운 적성을 발견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나 재미있었다. 스스로 가르치는 재미에 흠뻑 빠져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일부러 도장에 나가 학생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같이 호흡했다. 이형진, 민상연, 박창명, 백찬희, 오유진, 설현준, 신진서, 황재연, 유병용, 강병권, 최영찬 등 요즘 촉망받는 신예 유망주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프로에 입문했다.
지난 2월에 한국기원 근처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바둑도장을 열었다. 동료기사 조한승, 김주호가 함께 지도사범을 맡고 있다. 아직 학생이 다섯 명 밖에 안 되지만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이제 3개월 밖에 안 됐는데 다섯 명이면 많은 거죠. 모두 일당백의 유망주들이어서 머지않은 장래에 한종진의 수제자가 입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사진설명] (사진 둘 중 하나 택일)/
KB리그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CJ E&M의 한종진 감독. 입단 18년 만에 9단으로 승단, 경사가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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