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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피 받지 않는 무수혈 수술... 꾸준히 관심 받는 이유는?

입력
2014.05.2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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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어도 의학적 이유로 남의 피를 받지 않는 수술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선한 피를 수혈해도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병원 제공
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어도 의학적 이유로 남의 피를 받지 않는 수술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선한 피를 수혈해도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병원 제공

환자에게 적합한 혈액 엄선해도 수혈 부작용 있어 대안으로 모색

수술 전 적혈구·혈색소 미리 높여 그래도 모자랄 땐 출혈 피 재활용

국내 20개 의료기관에 관련 센터 안전성 등 추가 연구로 보완돼야

지난해 초 양산부산대병원에서 부부가 생체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부인의 간을 떼어 간경화를 앓던 남편에게 넣어준 것이다. 당시 간을 잘라내고 이식하는 두 수술 모두 수혈 없이 진행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수혈 수술 하면 이른바 여호와의증인 교인 등 일부 사람들이 종교 신념에 따라 고집하는 수술 방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종교와 무관하게 무수혈 수술에 관심을 갖는 환자가 적지 않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반드시 수혈 수술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혈도 장기이식의 하나”

간 이식은 출혈이 가장 많은 수술 중 하나다. 간 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진 간경화 환자의 간은 대부분 가장 큰 혈관이 막혀 있기 때문에 그 주변에 수많은 모세혈관이 모여든다. 다른 간을 이식하기 위해 간의 일부를 잘라내면 출혈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환자라도 수혈 없이 수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수혈 양을 줄일수록 환자의 예후와 사망률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도 나와있다.

이처럼 의사들이 무수혈 수술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수혈의 부작용과 위험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감염된 혈액이 유통됐을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수혈의 위험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수혈을 할 때는 혈액형 확인뿐 아니라 추가로 10여 가지 검사를 거쳐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혈액을 고른다. 이렇듯 엄격하게 혈액을 선택해도 수혈 후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무수혈센터의 유병훈(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교수는 “넓게 보면 수혈도 장기이식의 하나이며 수혈 가능한 혈액이라도 막상 환자의 몸에 들어가면 크고 작은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최근 미국에서 수혈 때문에 사망한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폐에 면역반응이 생긴 경우가 많았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종교적 신념이 아닌 의학적 근거에 따라 무수혈 수술을 고려하는 의료진과 환자가 조금씩 늘고 있는 것으로 의료계는 파악하고 있다.

자기 혈액 재활용도

피는 혈관을 타고 몸 곳곳을 돌며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불필요한 대사산물을 가져다 배출시킨다. 수술 중에도 이런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혈관 안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부피를 유지할 만큼 피의 양이 충분해야 한다. 때문에 무수혈 수술 전에는 대개 골수를 자극해 피의 주요 성분인 적혈구를 많이 만들어내게 하는 약(조혈제)과 산소를 운반하는 혈색소(헤모글로빈) 수치를 올리는 약(철분제)을 환자에게 투여한다. 그리고 수술 중에는 출혈 때문에 줄어든 혈관 내 피의 용량만큼을 수액으로 채워준다.

그래도 피가 부족하면 환자 자신의 혈액을 ‘재활용’하기도 한다. 수술 시작 직후 미리 환자의 피를 적당량 뽑아뒀다가 필요할 때 주입하거나 수술 중 출혈로 새어나가는 피를 기계로 빨아들인 뒤 적혈구만 걸러 다시 넣는다.

이런 과정에서 의학적 쟁점은 수혈과 무수혈을 가르는 기준이다. 과연 어느 시점까지를 무수혈 수술을 지속해도 괜찮다고 볼 수 있는지, 수혈 수술로 빨리 전환해야 하는 시점은 언제인지를 둘러싸고 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현재 이를 판단하는 국제학계의 공통 기준은 피 속의 혈색소 수치다. 건강한 성인의 평소 혈색소 수치는 피 1㎗당 15g 안팎이다. 미국 의학계는 이 수치가 7g/㎗ 아래로 떨어지면 수혈을 권한다.

한국의 보건당국과 관련 학계도 이 기준을 따르는 ‘수혈 가이드라인’을 2011년 발표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는 무수혈을 시도하다가도 혈색소 수치가 8~9g/㎗만 되면 혹시나 하는 걱정에 수혈로 전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문의들은 보고 있다. 유 교수는 24일 상계백병원에서 열린 ‘무수혈수술 심포지엄’에서 “혈색소 수치가 8~9g/㎗로 떨어졌을 때 굳이 수혈 수술로 전환하지 않아도 특별히 문제가 생기진 않기 때문에 국제 기준(7g/㎗)을 따를 필요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확산됐지만 여전히 ‘비주류’

무수혈 수술은 1957년 미국에서 처음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약 30년 뒤 첫 무수혈 수술이 이뤄졌다. 이후 20개 가까운 국내 의료기관에 무수혈 수술 센터가 생겼고 암을 비롯한 인공관절, 제왕절개, 심뇌혈관질환 등 다양한 수술에 무수혈 방식이 적용됐다. 그러나 대세는 여전히 수혈 수술이다. 무수혈 수술이 얼마나 이뤄지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무수혈 수술이 한국에서 활성화하지 못하는 이유로 전문의들은 짧은 역사와 적은 사례 탓에 임상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 수혈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환자가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점 등을 꼽는다. 관상동맥우회술(좁아졌거나 차단된 심장혈관 근처에 추가로 혈액을 공급할 수 있는 우회혈관을 연결하는 수술) 같은 일부 수술에선 무수혈 방식이 수혈 방식보다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는 보고가 나오기도 했다.

임소형기자 pre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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