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7월부터 적용
앞으로 공식대국에서 초읽기 때 대국자의 화장실 출입이 사실상 금지된다. 한국기원은 최근 ‘대국 종반에 이르러 초읽기 상태에서는 대국자가 어떠한 이유로도 계시기를 정지 시킬 수 없다’고 경기규칙을 개정, 7월 1일부터 모든 국내외 기전에 적용키로 했다.
종전 규정은 ‘대국자가 초읽기 때 화장실에 갈 경우 먼저 착수를 하고 계시기를 일시 정지한다’고 돼 있었기 때문에 대국자 마음대로 언제든지 대국을 일시 중단하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30초나 1분 안에 착수를 해야 하는 초읽기 상황에서 화장실이 급하면 대국자는 매우 곤혹스럽다. 프로들은 모두 이같은 사정에 공감하기 때문에 초읽기 상황에서 잠시 계시기를 멈추고 몇 번이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다는 경기규칙이 지금까지 유지됐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이 조항이 비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원론적인 문제다. 바둑이 이미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에서 선수 개인의 생리문제 때문에 경기를 중단하는 건 너무 이상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TV생중계 대국에서 초읽기 때 대국자가 자주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대국의 흐름이 끊겨 관전하기가 불편했다는 시청자의 의견이 많았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점도 있다. 초읽기 때는 단 1초가 아쉬운 상황이므로 복잡한 수상전이 벌어졌을 때 대국자가 규정을 악용해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시간을 벌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주요 대국을 대부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므로 화장실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해 자기 대국을 불러서 놓아보기 기능을 이용하면 잠깐 사이에 충분히 수읽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저런 문제점들을 아예 원천 봉쇄하기 위해 일단 초읽기 상태에 들어가면 어떤 이유로든 계시기를 정지시킬 수 없다고 경기규칙을 고친 것이다.
물론 초읽기 상황이 아니라면 충분한 시간 여유가 있으므로 언제든지 대국자가 계시기를 정지시키지 않고도 자기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다. 하지만 초읽기 상황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실제로 최근 한 프로기사가 KB리그 경기를 둔다고 가정하고 모의실험을 해봤더니 초읽기 시간인 40초 이내에 화장실을 다녀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중국에서는 ‘초읽기 시 기사는 상대방의 고려 시간 때 심판의 허락을 받고 자리를 뜰 수 있다. 단 1국 당 1번으로 제한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일본은 종전 한국 규정과 마찬가지로 ‘초읽기 시에는 계시기를 멈추고 화장실에 갈 수 있다’고 돼 있다.
프로기사들 사이에서는 이같은 경기규칙 개정에 대해 ‘생리현상을 제한하다니 너무 한 것 아니냐.’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다. 과거 대국장에서 흡연이 금지됐을 때도 처음에는 골초기사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많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정착됐듯이 이 문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한시간 3시간이 넘는 장고대국에서 점심시간을 따로 두었던 그동안의 관행도 점차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다음 달 초에 열리는 LG배 본선에서는 점심시간을 없애는 대신 대국실 내에 간단한 먹을거리를 마련해 대국자들이 각자 3시간씩 주어지는 자신들의 생각시간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요기를 하도록 할 방침이다. 그동안 LG배에서는 점심시간 중에 일부 선수들이 서로 자신들의 대국에 관해 의견을 나누거나 훈수를 할 수도 있다고 보고 선수들의 점심식사 자리에 주최측 감독관을 배석시키는 궁색한 방법까지 동원했다.
공식대국에서 점심시간을 없애는 건 오히려 중국이 앞서 있다. 생각시간이 각자 2시간이 넘는 을조리그 경기가 이미 점심시간 없이 치러지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이세돌-구리 10번기도 제한시간이 각자 4시간씩이어서 한 판을 두는데 보통 10시간가량 걸리지만 별도의 점심시간 없이 대국자가 각자 자기 시간을 사용해서 별실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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