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5월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폭언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시작된‘갑을논란’이 꼭 1년이 됐다. 남양유업 사태 이후 백화점과 대형마트 입점업체부터 편의점, 화장품 가맹점, 주류 도매상까지 수많은 ‘갑질’사례들이 불거지기 시작했고, 대기업들은 이 때마다 고개를 숙인 채 사과하기에 바빴다. 기업들은 개선대책을 내놓았고, 국회 차원에서 입법도 이어졌다.
지난 1년간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수직적 갑을관계는 존재한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관련 법안이 발효됐지만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취지가 후퇴하거나 아예 무산된 법안도 적지 않다.
우선 지난 2월 가맹사업법개정안이 발효됐지만, 대다수 ‘을’들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편의점의 경우 ▦24시간 영업강요 행위금지 ▦예상매출액 서면제공 등의 내용을 담은 가맹사업법개정안이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고 점주들은 지적하고 있다.
편의점인 CU의 한 가맹점주는 “당초 새벽 1시~7시 사이나 밤 11시~7시까지 문을 닫을 수 있도록 논의됐었는데 올해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오전 1~6시로 조정됐다. 하지만 정리나 준비시간 등을 감안하면 실제 쉴 수 있는 시간이 3시간으로 줄어들어 실효성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또 점포를 낼 때 본사가 예상매출액을 점주에게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광역시에 점포를 낼 때 점포 부근 가까운 3개 점포만의 평균 예상매출액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 이 역시 점주에게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나마 을의 보호책으로 생겨났던 규제들은 폐지되고 있다. 김남근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겸 변호사는 “최근 공정위가 빵집, 편의점에 대한 가맹점간 거리제한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경제민주화 성과마저도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양유업 사태로 발의된 대리점거래공정화법(남양유업방지법)은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발로 1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는 대리점의 형태가 다양해 하나의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면서 최근 본사와 대리점간 불공정 행위를 명시한 고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대리점주들은 “고시는 법이나 시행령에 명문화한 것에 비해 제재 강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남양유업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참여연대는 이날 오비맥주가 대리점에 과도한 외상매출 담보를 요구했다며 공정거래법상 불공정거래 혐의로 오비맥주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주류도매업체 오션주류의 대리인인 박진석 변호사는 “오비맥주가 단기간에 과도한 담보를 요구했고 출고 불이익을 주는 등 압박을 가한 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비맥주 측은 “오션주류는 국내 여러 주류 제조사로부터 고의부도 사기와 채무불이행 등을 이유로 고발당한 불성실 거래처이며 수년간 악성 연체가 발생해 정상거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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