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된 여론의 반전 "가능성 없다" 판단
청문회를 거쳐도 개인 치부만 드러나 '식물총리' 못 면해
28일 오후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전격 사퇴 직후, 총리실 주변에서는 ‘고사리 캐 먹으며 구차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백이숙제(伯夷叔齊)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말이 나왔다. ‘국민검사’로 불릴 정도로 나름 평생을 절제하며 쌓은 명예가 총리 후보로 지명된 이후 급속히 허물어지자, 특유의 결기로 사퇴 카드를 던져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청와대 내정 직후만 해도 안 후보자가 검증 과정에서 낙마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검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그가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한나라당 대선자금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로 쌓은 ‘올곧은 검사’라는 이미지가 여전했고 과거 대법관 시절 인사청문회에서도 별다른 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론 흐름도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흐트러진 공직기강을 다잡고 ‘국가개조’를 주도할 구원투수 이미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예상치 않게 전관예우에 따른 거액 수임료 논란이 불거졌다. ‘거액 수임료 가운데 4억원 이상을 소외계층에 기부했다’는 해명도 내놓았지만, 총리 인선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 19일 유니세프에 내놓은 3억원이 총리직을 염두에 둔 정치기부’라는 폭로가 나오면서 완전히 수세에 몰렸다.
총리실 관계자는 이와 관련, “안 후보자 사퇴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개인적 자부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 기부 등 일련의 사태에서 불거진 의혹에 대해 결백을 입증하려는 행동”이라고 해석했다. 한차례 해명 기자회견(28일)을 통해 밝힌 것처럼 그가 총리 지명을 수락한 게 개인적 공명심이 아니라 국가에 봉사하기 위한 희생적 행동이었다는 점을 극단적 방법으로 증명하려 했다는 얘기다.
안 후보자의 사퇴 결정이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이나 상의 없이 이뤄진 정황을 봐도 그렇다. 청와대에 따르면 안 후보자는 이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사의를 통보한 뒤 곧바로 오후 5시쯤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물론 악화된 여론을 반전시킬 가능성이 낮다는 객관적 분석도 사퇴 결정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던 안 후보자 측근들은 수임료 의혹을 극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4억원 기부사실을 공개하면 전관예우로 낙마했던 이전 사례와의 차별화가 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객관적 증명이 어려운 ‘기부 시기’논란으로 확대되면서 대응에 실패했다.
야당이 ‘기부금 총리’, ‘전관예우의 적폐’라며 국회 청문회에서의 강공을 예고한 것도 사퇴 결정에 주요 요인이 됐다. 청문회를 거치면서 야당 공격으로 개인적 치부까지 드러나는 상처투성이 상태로는 총리직에 오른다 해도 당초 꿈꿨던 ‘책임총리’ 혹은 ‘진언하는 총리’로서의 위상 정립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자는 그러면서도 이날 전격 사퇴 선언을 하면서 해명 기자회견에서 밝힌 11억 기부 약속에 대해서는 “기부 약속은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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