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에 휘둘리고 있는 서울시교육감 선거 우려
‘깜깜이 선거, 아무나 후보’ 폐해 극복할 대안 절실
얼마 전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겠다며 교육감 직을 사퇴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들이 임기 중에 다른 선출직을 기웃거려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학생교육 책임지겠다고 나섰던 교육감까지 일반 정치판 진출을 위해 남은 임기를 포기해도 되는 건가 싶었던 것이다. 배경이야 어쨌든,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은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초강세 지역인 서울 서초갑 지역구 전략공천 제안을 받고도 남은 임기를 거론하며 고사했다. 그 사례도 김 전 교육감의 선택을 바라보는 시각에 작용했으리라.
마음이 불편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젠 교육감도 아무나 하겠다고 나서는 판이 되겠구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옳든 그르든, 김 전 교육감은 ‘진보교육감’의 좌장으로서 학생인권조례와 무상급식, 혁신교육에 이르기까지 일선 교육감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교육자치제의 간판스타가 된 인물이 임기까지 포기하며 일반 정치에 나섰으니, 역으로 일반 정치인들이 교육감 하겠다고 너도나도 나서는 걸 견제할 금도를 교육계 스스로 허문 셈이 된 것이다.
좋지 않은 예감은 왜 그리도 잘 맞는지. 최근 서울시교육감 선거판을 보면 그 때의 기분 나쁜 우려가 결코 빗나가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높은 인지도를 믿고 단기필마 후보로 나선 고승덕 변호사가 판을 휘젓고 있는 양상이다. 그가 후보로 나선 초기만 해도 적잖은 이들의 반응은 ‘아니, 저 사람이 무슨 교육감?’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18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 출신이라거나, TV 오락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친 예능인급 인물이라서만은 아니었다. 고 변호사의 주식강의나 천재 고 변호사의 증권고시 패스 같은 책을 잇달아 내며 주식 전문가로도 변신할 만큼 재기발랄한 기질 자체가 백 년을 바라보며 소걸음처럼 움직이는 게 맞을 교육행정의 수장에 어울리겠느냐는 의구심이 작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각의 냉소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월등한 인지도를 앞 세운 고 후보의 승부수는 쾌속순항 중이다. 대중적으론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교육학자이지만 왠지 점잖기만 하고 굼떠 보이기 십상인 문용린 후보나, 어딘지 곽노현 전 교육감 비슷한 분위기만 감돌 뿐인 조희연 후보의 얼굴은 제대로 인식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고승덕 24.8%, 문용린 12.1%, 조희연 8.9%로 나오는 최근 지지율 상황은 얼굴 없는 교육감 선거판에 등장한 프로급 스타의 돌풍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국회가 후보의 교육경력 자격요건을 완화하는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 처리를 지연하면서 이례적으로 교육경력 요건이 아예 없어진 상태로 치러지게 됐다. 고 후보 돌풍은 어찌 보면 그에 따른 이례적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 선거부터 적용키로 한 3년 이상의 교육경력 요건도 적절한 기준 없이는 교묘하게 요건을 맞춘 정치인이나 또 다른 명망가들의 판세로 흐르기 십상이다. 따라서 교육감 직선제를 지금처럼 유지하려면 최소한 교육현장을 상당 기간 직접 경험해 본 전문가가 후보로 나서는 금도가 지켜질 수 있도록, 기준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물론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감 직선제의 개선이다. 그 동안 민주화 성과인 교육자치제를 섣불리 물릴 수 없다는 명분으로 교육감 직선제가 고수돼왔지만, 나타난 결과는 무상급식이나 학생인권선언 등 덜 절실한 문제를 둘러싼 진영싸움과, 교육감과 지자체장, 교육부 간의 소모적인 갈등뿐이었다. 혁신교육 역시 궁극적으로 대학입시 제도가 변화하지 않는 한 애먼 학생들만 골탕 먹기 십상인 실험에 불과했다.
따라서 교육감직선제가 진영싸움을 넘지 못하는 ‘깜깜이 선거’에다, 자칫 아무나 나서 전문성까지 훼손될 우려가 크다면 지금부터라도 개선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미 시장ㆍ도지사와 교육감 후보의 러닝메이트제도, 시장ㆍ도지사 임명제, 교육 관계자들에 의한 제한적 직선제 등 개선 방향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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