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윤
격)월간잉여 발행ㆍ편집인
인류 절멸 위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만화 세븐 시즈도 흥미롭게 봤다. 예견된 운석의 낙하로 인류가 절멸할 것을 대비, 청소년들을 선별해 냉동 보관하는 프로젝트 ‘세븐 시즈’에 대한 얘기다. 선별된 청소년들은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며 다시 인류를 번성시킬 수 있는 씨앗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름도 세븐 ‘시즈’다. 프로젝트 구상자의 딸이었던 여자 주인공도 이들 중 하나다. 그녀는 달라진 환경에서의 생존을 위해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도록 돕는 심성을 기르는 것에서부터, 먹어도 될 것들과 먹어선 안 될 것들을 구별하는 법, 수영, 암벽등반, 무술 등의 서바이벌 훈련까지 가지가지 배운다.
인류 멸망을 상상하다 보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스스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내가 어떨 때 ‘살아있음’을 느끼는지 생각해봤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웃고 떠들 때, 영감을 주고받을 때인 것 같다. 다른 생명체들에 영향력을 끼칠 때도 책임감과 자존감을 느낀다. 서울시가 노들섬을 텃밭으로 개방했다. 지원서를 내고 공개 추첨을 거쳐 당첨되면 일 년 동안 가꿀 수 있는 땅 한 평이 배당된다. 나도 당첨돼 상추, 겨자, 감자, 무, 방울토마토 등을 기르고 있다. 내가 갈아엎고 비료 먹인 땅에서, 내가 심은 것들이, 내가 주는 물을 받아먹고 결실을 맺는 것을 보는 게 기쁘고 보람 있다. 이웃 텃밭 주민들과 말을 섞고 원두막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나는 이렇게 ‘가지가지 하며’ 사는 게 삶의 본질에 가깝다고 느낀다(더 가지가지 해야겠다. 수영, 암벽등반, 무술까지 배우면 ‘생존왕’이 될 수 있겠지?).
자본주의는 분업생산을 선호한다. 그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체제는 자기가 소비하는 것들이 어떻게 생산됐는지 모른 채 소비하고, 그저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버는, 소비만 할 줄 아는 이들을 대거 양성한다. 우리가 입는 옷, 사용하는 전기와 물, 우리가 먹는 식료품이 어떻게 생산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오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순환을 인지하지 못하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서적인 부분도 문제다. 전체적인 과정을 인지하지 못하고 일부분의 일만 수행하다 보니 거대한 체계의 부품이라는 감각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삶이 공허하고 무의미하다고 느껴진다.
효율을 추구하는 체제가 누군가의 희생과 소외를 전제한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우리가 소비하는 물품들의 저렴한 가격은 제 3세계를 착취하거나 저임금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에 둔 결과다. 수도권 주민들과 기업들이 펑펑 쓰는 전기는 비수도권에 원자력발전소와 송전탑을 세워 끌어다 쓴 결과다. 국내 50대 기업은 돈 잔치를 벌이지만 이것은 ‘돈이 돈을 번 것’이기에 많은 노동자 및 예비 노동자들은 잔치에서 소외되고 있다. 저임금과 고용 불안정성에 시름 하는 노동자들이 많고, 그나마 일을 하지 못하고 ‘잉여’가 된 인간들이 많다. 성장 중심주의와 기술 발전으로 인간의 노동이 덜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현 체제는 이렇게나 인간을 소외시킨다. 그렇다면 이 체계에 조금은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건강함을 지키는 길이 아닐까?
나는 이번 서울시의 정책 기조가 ‘인간다운 삶’을 강조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텃밭을 통해 먹거리의 성장을 체험하고 자연의 순환을 배우며 이웃과 소통하는 것, 청년 허브를 통해 청년들끼리의 만남과 성장을 돕고 청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준 것, ‘원자력 발전소 하나 줄이기’ 캠페인을 벌인 것 등이 이를 방증한다. 내가 속한 지방자치단체가 계속 이런 기조를 이어가기를 희망한다. 지역 단위의 자립을 도모하는 것은 거대한 착취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을 도울 수 있고, 지역 문화를 풍성하게 하고 이웃끼리의 교류를 돕는 것은 소비자로서‘만’ 사는 것이 아닌, ‘인간답게’ 사는 것을 도울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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