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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시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총리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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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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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장이 26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책임총리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총리가 국무위원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김철수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장이 26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책임총리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총리가 국무위원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최근 권력구조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일이 두 가지 있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이 안대희 전 대법관을 권력 2인자인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국회의장 직속의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6년 단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을 제출했다. 책임총리제와 개헌론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헌법학자인 김철수(81) 헌법개정자문위원장을 만났다. 김 위원장은 “책임총리제가 되려면 총리가 헌법에 규정된 국무위원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대통령 지시에 대해서도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대통령은 총리에게 권한과 책임을 분산해 책임총리제를 위한 여건을 마련하고, 총리도 행정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개헌 시점에 대해 “대통령 임기가 2년쯤 남았을 때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 임기 만료 때 새 헌법을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명지대 석좌교수, 학술원 회원으로서 적극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김광덕 선임기자

-지난주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지명됐다. 역대 총리들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은데, 헌법상 총리의 권한은 어떤 것인가.

“우리나라에선 총리를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지위를 가진 재상으로 본다. 헌법에 따르면 총리의 역할에는 두 측면이 있다. 우선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 총리는 국무회의 부의장으로 의장대행도 맡으므로 행정의 2인자인 셈이다. 헌법은 또 총리에게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주고 있다. 이를 제대로 행사하면 상당한 권한을 가질 수 있다.”

-국무위원 제청권은 총리 권한의 강한 측면, 대통령의 명에 따른다는 점은 권한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헌법상 ‘책임 총리제’라고 할 수 있는가.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지만 국무회의 부의장으로서 국정 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공동으로 결정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총리는 국회와 대통령에게 책임져야 한다. 대통령의 명을 받았다고 해서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총리가 행정 업무에 책임진다는 의미에서 ‘책임 총리’라고 할 수 있다.”

-역대 대다수 총리가 ‘대독 총리’ ‘얼굴마담 총리’‘의전 총리’란 말을 들으면서 책임 총리 역할을 하지 못했다. 책임 총리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총리가 대통령과 적절히 상의해서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행사해야 한다. 과거에 총리를 허수아비로 여기고 대통령에게만 직보하는 장관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총리가 실질적으로 제청권을 행사해야 한다. 국무회의가 심의 기관이란 주장도 있지만 의결 기관으로 봐야 한다. 내각제를 가미한 대통령제 취지에 맞게 대통령과 총리, 각 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협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대통령의 지시가 있더라도 총리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안 된다. 만일 문제가 있다면 잘못됐다고 말해서 합의안, 절충안을 내도록 해야 한다. 또 합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총리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

-책임총리제를 실현하려면 대통령이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맞는 얘기다. 대통령이 모든 국정을 총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여유를 갖고 국정 전반을 살피기 위해서는 행정 분야의 소소한 일들을 총리에게 위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권한 분산과 동시에 책임 분산을 해야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부담이 적어지고 대통령의 권위를 지킬 수 있다. 그래야 대통령이 여론조사 지지율과 포퓰리즘에 끌려가지 않을 수 있다.”

-‘책임 총리’ 또는 ‘실세 총리’역할을 수행한 전직 총리를 꼽는다면.

“우선 DJP공동정권의 김종필 전 총리가 책임 총리 역할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 따라 공동정부를 구성해 김 전 총리에 실권을 주고 자민련 인사들에게 경제 분야 행정을 맡겼다. 김영삼ㆍ노무현 정부의 고건 전 총리와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전 총리 등도 책임 총리 역할을 좀 한 것 같다. ”

-검사와 대법관을 지낸 안 후보자가 총리로 임명되면 잘할 수 있다고 보는가. 법조인에게는 장단점이 있는데.

“안 후보자가 검찰총장을 맡으면 잘할 수 있지만 과연 총리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법조인은 대체로 명령과 지시에 잘 따르므로 주어진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통합과 국정계획 수립, 통일 등 대국적 문제에서는 경험과 창의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총리도 대국적 측면에서 국민 복리와 국가 장래를 생각하는 넒은 시야를 갖고 국민 전체를 위해 활동해야 한다. 반대파를 아우르고 설득하면서 국민 여론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력이 총리에게 요구된다.”

-지방선거 이후 개각이 이뤄질 텐데, 어느 정도 폭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한가.

“국민 여론이나 정치권은 대폭 개각을 요구한다. 하지만 무조건 장관을 많이 바꾼다고 잘 되겠느냐. 그동안 장관들의 업적을 봐서 잘못하거나 성과가 적은 장관은 책임을 묻고 경질하되 좋은 성과를 낸 장관은 유임시키면 된다. 장관도 책임 장관이 돼야 한다.”

-헌법 논리로 보면 각료 제청권을 가진 총리가 바뀌면 국무위원 대부분이 교체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

“내각제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 헌법에서는 각료 제청권은 총리에게 있지만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양면적 속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각료 전원을 교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 임명된 총리가 새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펴려고 할 경우 책임질 사람을 많이 발탁해서 제청해야 하지만 제청이 반드시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때 복수 추천이 이뤄지면 대통령이 낙점하는 게 관례이듯 총리가 서너 사람을 각료 후보로 추천하면 대통령이 평가 리스트를 참고해서 결정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의 특징은.

“제일 중요한 것은 권력 분산과 권력 간 상호 견제ㆍ균형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나쁜 점을 고쳤고 국회나 법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어떤 권력도 독재하지 못하도록 개헌안을 만들었다. 국회를 단원제에서 참의원과 민의원의 양원제로 바꿔 입법권을 분산시키기로 한 것도 그런 취지에 따른 것이다. ”

-권력구조에서 6년 단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대통령이 정당 보스 역할을 해 왔다. 과거에는 정당 당수까지 겸하니까 모든 국회의원들이 공천권 때문에 대통령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행사하면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지면서 권위를 상실하고 독재란 비판도 받게 된다.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민 전체를 위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취임 전에 당적을 이탈해 중립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도록 했다. 대통령이 국방ㆍ외교ㆍ안보ㆍ통일과 국민통합 분야를 맡고 중요 인사의 제청권 정도를 갖도록 했다. 단임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장기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임기를 5년에서 6년으로 늘렸다.”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총리는 어떤 역할을 맡게 되는가.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는 사실상 국무위원을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으므로 총리의 국정 통솔력이 강화된다. 다만 국방ㆍ외교ㆍ안보ㆍ통일 분야에서는 대통령이 총리와 상의해 장관을 임명한다. 법률 제안권, 법률 집행권, 예산안 제출권 등은 총리와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는 내각에 위임된다.”

-대통령중심제 모델인 미국처럼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를 도입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는데.

“물론 미국식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가 좋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미국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 대통령은 장ㆍ차관 등 3,000명 이상의 정무직 공무원을 맘대로 임명할 수 있다. 상하 양원이 예산 편성권을 갖고 대통령 권한을 견제할 수 있지만 사실상 대통령이 내정을 맘대로 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제를 그대로 실시하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 미국 내에서도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권력 분산을 위해 적합한 의원내각제를 제안하지 않는 이유는.

“내각제는 국회 중심의 정부 형태이다. 국회가 총리 선임ㆍ불신임권을 갖고 재정에 간섭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각제에서는 특정 정당의 장기 집권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독일에서도 상당수 총리가 10년 이상 집권했다. 한편으로는 정당 간의 대연정, 소연정 타협이 이뤄지지 않아 정국 불안이 가중될 위험성도 있다. 우리나라는 남북 대치 상태이면서 국론 분열이 심하므로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중간 형태로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1987년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뒤 개헌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실제로 헌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개헌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

“헌법 개정 논의가 이뤄지면 개헌 이슈가 블랙홀이 돼서 대통령이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빨리 개헌안을 통과시킨 뒤 자신의 임기가 끝날 때 새 헌법을 시행하겠다고 하면 추진할 수 있다. 대통령 임기 후반부에 들어가서 유력 대선후보가 부각되면 개헌을 추진할 수 없다. 대통령 임기가 2년쯤 남았을 때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2년 후에 새 헌법을 시행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기본권 분야에서 새로 제안한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선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변경했다. 인간의 존엄과 행복 추구권을 그대로 보장하면서 신체와 정신의 온전성, 생명권,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권리 등을 추가했다. 평등권 분야에서 임신ㆍ출산ㆍ양육을 이유로 한 차별 금지와 어린이ㆍ노인ㆍ장애인 차별 금지 등을 새롭게 규정했다. 알권리, 자기정보결정권, 언론 매체의 자유 등을 추가했다.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민주적 기본질서와 공공의 안녕질서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제한을 뒀다. ”

-세월호 참사로 국민의 안전권이 중시되고 있는데, 개정안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겼는가.

“현행 헌법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안전권을 보장하고 그것을 위해 국가가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국민들은 안전한 행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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