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사슬 끊기 어려워
승진 안 해도 보수 오르고
전문성 갖고 일할 수 있는
직위분류제 도입 목소리
2005년 건설교통부에서 퇴직한 A씨는 그 해 말 산하 연구기관장으로 재취업했다. 이어 지방광역시 부시장을 거쳐 2010년 11월부터 지역발전 전략을 담당하는 지방공공기관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A씨는 28년 간 관료 생활을 마치고도 퇴직 후 8년 5개월을 현직 못지 않게 화려하게 보내고 있다.
2007년 건교부에서 공직을 마감한 B씨도 마찬가지다. B씨는 퇴직과 동시에 국토부 낙하산 자리인 해외건설협회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년 뒤에는 시공능력평가 10위권의 대표이사로 1년간 재직했고 2010년 7월부터는 지방공기업 사장을 맡고 있다. 퇴직 후 7년 가까이 인생 이모작을 즐기고 있다.
관피아 폐해를 해소하려면 통상 ‘최소 현직 20년, 퇴직 후 10년’을 당연시하는 고위 공무원들의 경력 주기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시 기수별 승진 시스템 속에서 후배가 앞질러 승진하면, 조기 퇴직하는 대가로 민간에 재취업하는 관행이 유지되는 한 관피아 척결은 어렵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세월호 참사 대책으로 “퇴직관료의 재취업 제한기간 연장(2년→3년)과 취업제한 기관 3배 확대” 등을 발표하자 공직사회기 술렁이고 있다. “어느 정도 퇴로는 터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다. 특히 곧 있을 개각 후 이어질 각 부처 인사에서 승진에 누락할 경우 옷을 벗을 확률이 높은 실ㆍ국장들은 당장 자기 때부터 재취업이 사실상 원천봉쇄 될 것이란 전망 때문에 불안감이 크다.
공무원들은 승진할수록 월급이 인상되고 인ㆍ허가권을 포함해 권한이 늘어난다. 승진이 지상과제인 이유다. 능력이 남달라 승진이 빠르면 행정고시에 합격해 사무관으로 임용된 후 25, 26년 남짓이 지난 40대 후반에 1급 실장 자리에 오르는 경우도 생겨난다. 그러나 이후 차관으로 승진하지 못한다면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해 옷을 벗어야 한다. 그러면 각 부처는 조기퇴직을 종용 당한 선배의 앞길을 보장해주기 위해 산하기관 기관장이나 유관협회 고위 간부직을 조직적으로 알선해준다. 관료 20년, 산하기관ㆍ협회 재취업 10년의 강고한 관피아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관행에 대한 대안 마련 없이 퇴직 공무원 재취업만 막는다면 공무원들은 다양한 편법과 우회로를 만들어 낼 것이다. 게다가 공무원들의 승진 의욕이 저하돼 가뜩이나 복지부동이 심각한 관료사회의 활력이 더 떨어질 우려도 높다.
이에 따라 선진국처럼 승진을 하지 않더라도 보수를 인상하고 직군ㆍ직렬별로 전문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직위분류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윤태범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법이 보장하는 정년퇴직조차 쉽지 않은 현재 공직사회 구조에서 관피아 문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직무능력 평가로 보수를 인상하고 관료의 전문성을 키워야 퇴직 후 유관기업과 단체를 기웃대는 폐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직위분류제가 정착되면 순환보직에 따른 공무원 전문성 부족문제도 해결되고 정년까지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문화도 정착되는 효과가 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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