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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상해죄’

입력
2014.05.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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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남산도서관에서 접한 이래 결혼해서 아버지가 되도록 무협지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평일에는 만화방에서 빌려서 밤을 새워 읽었고, 휴일에는 도서관 간다고 집을 나서서 만화방으로 직행하곤 했다. 시쳇말로 뻥인 줄 훤히 알면서도 재미있었다. 뻔한 영웅담이지만, 온갖 절세신공(絶世神功)이 흥미를 부추겼다. 옥소(玉簫)나 거문고 연주로 상대 고수(高手)를 제압하는 음공(音功)은 특별히 멋졌다. 영화 쿵푸허슬에도 여러 음공이 나온다.

▦ 시간이 흐를수록 무협지의 음공 묘사에는 과장이 더해졌다. 건너편 바위산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몰려든 수백의 악도(惡徒)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지경에 이르러 더는 참지 못하고 무협지를 끊었다. 무협지의 ‘신공’이 지나치게 과장되긴 했지만, 공상과학소설(SF) 내용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원리를 담고 있어 언젠가 초보적 수준의 현실화는 가능하리란 믿음은 그대로다. 미국이 각종 음파무기 개발에 애쓰고 있다는 소식이 은근히 반갑기까지 한 이유다.

▦ 소리가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음은 세계 보편의 소음규제만으로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일정 크기 이상의 소음은 청각 손상과 정신적 고통, 정서 혼란 등을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상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제한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도 주간 80㏈, 야간 70㏈ 이상의 소음을 내는 시위를 막고 있다. 그 기준에 맞춰 밤낮으로 장송곡을 틀어 군부대 이전에 반대한 ‘장송곡 시위’ 주동자들이 폭력행위 등 처벌법 위반(공동상해) 혐의로 기소됐다.

▦ 형법의 상해죄는 ‘생리적 정상 기능의 훼손, 즉 육체적 정신적 병적 상태의 야기 또는 증가’ 행위에 적용된다. 찰과상이나 피하출혈(멍)은 물론 수면장애, 식욕감퇴를 부른 것까지 상해에 해당할 수 있다. 장기간의 ‘장송곡 시위’가 장병들에 두통과 환청 등을 안겼다는 인과관계만 확인되면 ‘소리 상해죄’도 인정될 수 있다. 다만 업무방해죄가 위법성이 조각되는 정당한 파업까지 제약하듯, ‘소리 상해죄’가 집회와 시위의 새로운 장벽이 될까 걱정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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