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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이 시대의 모든 장인들에게

입력
2014.05.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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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장인을 岳父(큰 산 같이 든든한 아버지)라고 불러

사위를 이해하고, 감성 소통하며, 장점을 살려 줘야 '악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 간에는 흔히 ‘갈등’이 접미사 같이 붙었지만, 서양 사회는 오히려 장모의 간섭이 심해 ‘장서 갈등’에 익숙하다. 우리 사회는 예전부터 백년손님인 사위 사랑은 장모라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장모와의 불화가 이혼 사유 1위라고 한다. 반면에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고 해서 이 시대의 ‘구부’ 관계를 특징짓기도 한다. 가장 애매한 것은 장인과 사위의 ‘옹서지간’으로, 이들 사이를 특징적으로 설명하는 그 어떤 수식도 붙지 않는다. 기껏해야 개그콘서트의 ‘…’ 코너와 같이, 소 닭 보듯 숨 막히게 어색한 사이 정도로 그려질 뿐이다.

전통적으로 장인들은 사위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금지옥엽을 뺏어간 ‘딸 도둑’ 정도로 여겨왔다. 일단 결혼을 하면 ‘시집’에 들어가서 출가외인이 되어 버리니, 친정 부모로서 말도 못하게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유교적 가족제도가 만들어 낸 조선시대 이후의 전통이지만, 그보다 앞선 고려시대로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결혼한 딸에게도 재산을 물려주는 이른바 ‘남녀균분상속제’가 일반적이었고, 많은 사위들은 결혼하여 처가살이를 하는 ‘장가’를 들던 시대였다. 처부모에 대한 효도와 부양책임은 아들보다 오히려 사위에게 있었다. 심지어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사위와 외손자들이 제사를 모시는 외손봉사도 흔한 풍습이었다. 이 관습은 조선 초까지 지속되어, 처가나 외가의 큰 도움으로 명문가나 위인이 된 사례가 많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유명한 경주의 양동마을은 원래 월성 손 씨의 마을이었으나, 이곳으로 장가를 든 여주 이 씨들이 자리 잡아 두 명문 가문이 공존하는 마을이 되었다. 특히 양동마을 이 씨의 실질적 시조라 할 수 있는 회재 이언적은 외숙부인 우재 손중돈의 교육과 후견으로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가 되었다.

장인(丈人)이란 한자어는 ‘어르신’을 뜻할 뿐, 처부모를 뜻하는 어떤 의미도 없다. 반면에 영어 명칭인 ‘father-in-law’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생겨난 ‘아버지’ 임을 인정한다. 장인의 3인칭인 ‘빙부(聘父)’와도 유사한 의미이다. 지금은 생소하지만, 장인을 부르는 다른 명칭으로 악옹(岳翁)이나 악부(岳父)가 있다. ‘큰 산과 같이 든든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마도 고려시대의 사위들이 큰 도움을 받았던 장인을 부르던 존경의 이름일 것이다.

5대 꼴불견 장인의 유형이 있다. 일방적 설교만 일삼는 성직자형, 사위의 잘못을 꼬집고 훈시하는 지적질형, 자신의 사회적 능력만 과시하는 마초형, 대화보다 단답형 질문만 퍼붓는 면접관형, 처가 식구들만 자랑하는 피붙이형 들이다. 5대 꼴불견 사위도 있다. 무슨 일과 대화든지 대충 때우는 시큰둥형, 처가에 와서 잠만 자는 동면형, 지나친 예의로 정이 안 붙는 거리 유지형, 음식이나 음주를 지나치게 사양하는 성의 거부형, 처부모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논술 강사형 이라나?

이 시대의 옹서 간에서 “나는 그런 꼴불견이 아니야” 라고 자신할 수 있는 장인이나 사위들이 과연 있을까? 친부자 간에도 대화가 사라지고 최소의 예의만 남아버린 시대이니, 살가운 옹서 관계를 바라는 것 자체가 헛된 꿈인지도 모른다. 드물기는 하지만 이상적인 역사적 사례가 있다. 구약 성경 출애굽기에는 바람직한 옹서간이 등장한다. 바로 엑소더스의 민족 지도자 모세와 그 장인 이드로이다. 모세는 변덕스러운 유태 민족을 이끌고 광야를 방랑하는 데 많은 애로사항을 장인에게 낱낱이 토로한다. 이민족인 이드로는 사위를 따뜻하게 위로하고 현명하게 충고하여 커다란 도움을 준다. 그리하여 모세가 온 유태족의 칭송을 받을 때, 이드로는 사위에게 짐이 되지 않게 조용히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가르치기보다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지적하기보다 감성적으로 소통하며, 단점보다 장점을 바라본다면, 장인도 악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현명한 독자들은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 필자도 지난 주말 한 사람의 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대접만 바라는 ‘어르신’이 아니라, 든든한 ‘큰 산 아버지’가 되리라 다짐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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