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엘리엇 로저다. 이것은 내 마지막 비디오다. 내일은 응징의 날이다. 내일 나는 인류에게, 너희들 모두에게 복수를 가할 것이다.”
캘리포니아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인 엘리엇 로저가 범행을 저지르기 전 유튜브에 올린 비디오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비디오를 녹화한 후, 로저는 5월 23일(현지시각) 자신의 룸메이트들을 흉기로 살해한 후, 여학생 사교클럽 앞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자신의 차량 안에서 자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로저 자신을 포함한 7명이 사망하였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범행 직전 남긴 비디오로 심경 토로
로저는 유튜브 비디오를 통해 자신이 범행을 저지르는 동기를 자세히 설명했다. 현재 문제의 비디오는 유튜브에서 삭제됐지만 이미 복사본과 녹취록이 돌고 있다.
“난 22세이고 여전히 동정이다. 여자와 키스해 본 적도 없다. 대학 생활을 2년 반 해왔지만 난 여전히 동정이다. 매우 고통스러웠다. 대학은 모두가 섹스와 쾌락을 경험하는 시절인데 나는 외로움 속에서 썩어야만 했다. 이는 공정하지 않다.”
“여자들은 결코 내게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이건 불의이며 범죄이다. 난 완벽한 남자인데 너희는 나 같은 최고의 신사를 두고 다른 불쾌한 남자들에게 몸을 맡긴다. 나는 너희들을 모두 벌할 것이다.”
살의로 바뀐 성적 좌절
7분 남짓한 이 동영상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엘리엇 로저가 느낀 커다란 성적 좌절이다. 로저는 자신의 성적 좌절을 자신의 성애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잘못으로 돌리며 이를 응징하겠다고 되뇐다.
“응징의 날, 나는 대학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여대생 파티장에 들어가 거만하고 버릇없는 금발머리 여자들을 모조리 학살할 것이다. 내가 그토록 욕망하던 여자들 말이다. 그들은 내가 성적으로 구애했을 때 모두 나를 거부하고 나를 열등한 남자인양 깔보았고 다른 불쾌하기 그지없는 남성들에게 몸을 맡겼다.”
처음에 여성들을 겨냥했던 로저의 성적 좌절은 곧이어 남성에게 향한다.
“너희들을 가질 수 없다면, 너희들을 파괴하겠다. 너희는 내게 아무런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나 또한 너희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성적으로 활발한 모든 남성들에게 고한다. 나는 너희를 증오한다. 너희들이 받아 마땅한 절멸을 빨리 선사하겠다.”

배후의 용의자는 여성혐오의 문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로저의 범행에서 ‘여성혐오’가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로저는 남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온라인 운동에 연루되었고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관련 기사).
가디언 미국판의 칼럼니스트 제시카 발렌티는 “이러한 사건을 단지 ‘미친 사람’의 행위로 치부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엄혹한 진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칼럼 원문). 자신의 성적 좌절을 여성에 대한 증오로 치환하는 로저의 사고방식은 단지 개인의 정신적 문제가 아니라, “남성에게는 여성의 관심과 섹스를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미국의 젊은 남성들 사이에 팽배한 의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발렌티의 지적이다. 발렌티는 이 같은 사고를 은연 중에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해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던 비극
로저의 가족들은 범행을 저지르기 몇 주 전에 이미 경찰에 로저를 신고한 적이 있었다. 자살과 살인에 대한 언급을 담고 있는 로저의 영상 때문이었다. 경찰은 로저를 인터뷰하였으나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로저 가족의 변호사는 로저를 인터뷰한 경찰이 로저가 “완벽할 정도로 공손하고 친절하며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경찰이 로저의 비디오를 좀더 진지하게 여겼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찰이 로저의 비디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은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용인하는 문화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발렌티는 “세상에 외따로 존재하는 여성혐오자라는 건 없다. 여성혐오자는 우리의 문화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들의 증오가 흔한 것이며 정당화될 수 있다고 말하는 커뮤니티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는 노골적으로 여성혐오를 드러내는 일부 커뮤니티들이 당당히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세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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