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우선순위가 밀린 영역이 처한 심각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고 동시에 한국이라는 국가의 현재 수준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사진)은 26일 아산정책연구원 주최로 서울 신문로 연구원 강당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한국은 빠른 국가 근대화를 이뤄냈지만 국가의 가장 큰 임무인 국민 안전에는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이날‘시민의 안전과 국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한국이라는 근대화된 국가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눈에 띄고 화려한 부분에는 상당한 힘이 결집해있다”면서 “그러나 그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영역은 매우 참담한 상태로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소르망은 “예컨대 인천국제공항은 세계 일류 공항으로 찬사받지만 항만체계나 항만교통 등은 제3세계 수준”이라며 “현대적 기술이나 교육 수준 등은 세계 1위이지만 근대화라는 거대담론에서 밀려난 부분은 매우 저발전 상태”라고 꼬집었다. 이어 “세월호 참사는 한국이라는 국가의 지금 수준을 다시 살펴보게 하는 계기”라며 “한국에서 국가 행정체계의 근대화는 경제적 근대화 수준에 아직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소르망은 세월호 참사의 한 원인으로 국가 행정체계의 지나친 중앙집권화와 그에 따른 상명하달식 의사결정 방식의 문제점을 꼽았다. 그는 “국가가 세세한 영역에 대해서까지 너무 많은 책임을 떠안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며 “의사결정이 지역적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상황에 맞게 바꿔나갈 수 있지만 상명하달식은 많은 실수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소르망은 위계를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에도 폐단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복종을 강조하는 유교적 전통 때문에 학생들이 선실에 남아 있다가 비극을 당했다”며 “정부 각 부처에도 이런 문화가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로 다시 화두가 된 규제 문제와 관련, “적정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고, 이를 논의할 때는 부패에 관한 평가와 자성도 해야 한다”며 “부패란 규제가 분명하지 않을 때 그 틈새를 파고들기 때문에 적정 수준의 규제를 마련하고, 부패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제도의 허점을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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