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엔 대피방송도 없어
경기 고양시 고양종합버스터미널은 26일 오전 9시 가스 폭발 후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현장의 시민들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생지옥이었다”고 말했다. 직원 및 이용객 700여명은 출구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2층 터미널 대기석에 앉아있던 김서준(17)군은 “1층과 연결된 에스컬레이터에서 시커먼 연기가 확 쏟아져 올라왔다”며 “‘화재가 났으니 대피하라’는 방송이 몇 차례 나왔지만 어디로 탈출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는 없어 당황하다가 버스 기사의 안내를 받고 겨우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문용찬(33ㆍ명필름 제작실장)씨는 이날 오전 8시40분쯤 홈플러스에서 쇼핑을 하러 왔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지하 3층에 차를 대고 지상 2층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차에 들르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지하 2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덜컹’하고 멈추더니 문틈으로 연기가 들어왔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여 지하 3층으로 내려갔고 문이 열렸는데 시커먼 연기 때문에 앞이 안보였다”고 설명했다. 문씨는 깜짝 놀라 마구잡이로 버튼을 눌렀고 문이 열린 지상 3층에 내렸다.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망자 대부분이 발견된 지상 2층에서 대피 안내가 제대로 됐다면 희생자가 크게 줄었을 거라는 지적도 나왔다. 건물 내부 구조를 잘 아는 KD운송 관계자는 “사람들이 지상 2층 터미널에서 버스가 다니는 통로를 통해 나왔다면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에스컬레이터로 몰리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고 말했다.
지하층에는 대피방송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당시 지하 2층 홈플러스 야채코너에서 쇼핑을 하던 A(38ㆍ여)씨는 “점원들이 ‘빨리 대피하라’고 소리를 질러 짐은 그대로 둔 채 아이를 안고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며 “대피방송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성영(78) 심복자(74ㆍ여)씨 부부는 이날 경기 안산시 소재 병원에 들르기 위해 버스 터미널에 나왔다가 사고를 당했다. 당시 이씨는 2층 대기석에 앉아있었고 심씨는 화장실에 들어간 상태였다. 곧 2층까지 연기가 들이닥쳤고 고립된 공간에서 무방비로 유독가스에 노출된 심씨는 일산백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이씨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구출돼 일산병원으로 후송됐다. 이씨의 연락을 받은 아들 규윤(47)씨는 어머니 심씨를 찾아 인근 병원을 헤맸다. 규운씨는 “소방 당국이나 경찰은 기다리라고만 해서 인근 병원 중환자실을 이 잡듯 뒤져야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망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이달 초 고양종합버스터미널로 발령이 났다가 숨진 KD운송 직원(50)의 유족은 일산병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아이고, 죽으려고 그랬는가. 왜 하필 그 때 발령이 나서…”라며 주저 앉아 눈물을 흘렸다.
고양=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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