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왜 ]

16면21세기자본론주요내용/2014-05-26(한국일보)

“상속 증여세 부과도 강화해야”700쪽짜리 ?세기 자본론’화제의 베스트셀러로 급부상

만성 재정적자 해결 급선무인 미국·프랑스 동시 폭발적인 관심 통계 오류 논란도 잠재워

21세기 자본론(Capital in the 21st Century)의 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경제대학 교수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 하버드대는 이 책의 내용이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자 예정보다 두 달 이상 빠른 2월에 책을 내놨고, 책은 나오자마자 700여쪽의 두툼한 학술서로는 보기 드물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다. 42세의 젊은 피케티가 출간 홍보 차 지난 달 중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받은 환대는 국빈급이었다. 제이콥 루 재무장관과 면담했고, 오바마 대통령 경제자문회의와 간담회도 가졌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강연한 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및 폴 크루그먼 교수와 벌인 공개토론은 크게 회자됐다.

유명 언론의 인터뷰 내용과 서평은 이미 그를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 저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이나 자본론(Das Kapital)의 칼 마르크스에 비견할 만한 사상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피케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세기 자본론은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자료분석 오류를 제기해 논란(본보 26일자 2면)이 일었다. 책에 나온 통계를 검토한 결과 원래 자료를 잘못 인용했거나 부정확한 분석법을 적용한 사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몇 가지 오류가 있어도 부의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피케티의 주장에는 잘못이 없다며 대리 반론을 편 것도 눈길을 끌었다.

‘부유세’ ‘80% 최고세율 소득세’ 주장

피케티는 세기 자본론을 통해 소득의 불평등도가 심화되는 현상을 시장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체제하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이와 관련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와 시장자본주의간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라고 직언했다.

특히 조세정책으로 누진세율 구조를 갖는 글로벌 부유세를 부과하고, 개인소득세의 최고세율을 거의 80%에 달하도록 설계해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 그 외에도 개인의 부가 이전되는 단계에서의 상속ㆍ증여세 강화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세금 이외에 교육이 인적 자본(human capital)으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도를 결정하는 원인임을 지적해 교육정책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피케티 교수가 주장하는 부유세의 부과 대상 자산에는 부동산 이외에 금융자산 및 기타 실물자산도 포함된다. 이 부유세는 단일 또는 누진세율을 적용해 가계나 개인에 매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계가 소유한 자산에서 발생하는 자본소득 및 자본이득은 과세 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되기 쉽다. 따라서 소득세의 보완론적인 성격도 가진다.

부의 불균등 분배 완화를 목적으로 1910년대부터 제도화된 부유세는 한때 유럽 내에서만 10여개 국 넘게 시행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줄어 현재는 다섯 나라 정도가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소유자산을 시가로 매년 평가해야 어려움과 납부세액 현금 확보의 애로, 자산 해외도피 등의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독일은 부유세 과세대상 자산의 평가불균일 문제가 헌법재판소 위헌판결을 받아 1997년 부유세가 폐지됐다. 네덜란드는 저축과 투자에 대한 새로운 과세방식을 도입한 소득세법 전면 개편과정에서 2001년 부유세가 폐지됐다. 핀란드와 룩셈부르크, 스웨덴도 2007년 전후로 부유세를 폐지했다. 유럽 각국은 부유세 시행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경험으로 여기는 듯 하다.

하지만 부유세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국가채무 및 재정적자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피케티 교수의 모국인 프랑스와 스페인, 노르웨이는 현재 누진세율 구조의 부유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 가운데 프랑스와 스페인은 비교적 근래에 부유세를 도입하면서 ‘부의 불균등분배 완화’를 목적으로 누진세율구조를 택했다.

실증분석 연구로 소득 불평등 심화 밝혀

이 책이 분석해낸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구조는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 보다 높아 자본 소유자인 소득 최상위계층(0.01~1%)에 부가 필연적으로 집중된다는 것이다. 세계대전이나 대공황 등 자본파괴 현상이 없는 한, 이들은 소득 대부분을 저축하고 재투자하고 또 이것을 자손들에게 상속하므로 소득과 부의 불평등성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등 각 국의 수백 년 된 세금신고 자료들을 꼼꼼히 살폈다. 엠마누엘 사에즈 교수와 공동으로 미국의 연방소득세가 도입된 1913년부터 98년까지 소득불평등도를 분석한 2003년 논문은 좋은 예다.

21세기 자본론을 뒷받침하는 이 논문의 내용을 보면 미국 소득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1930년대 초 45% 수준에서 1960년대 이후 32% 대로 낮아졌다. 그러나 최고소득세율을 크게 낮춘 1986년 세법 개정 이후 미국 소득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다시 40% 수준 이상으로 올라갔다.

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 교수가 1950~1960년대 자료를 주로 분석해 발표한 쿠즈네츠 가설(경제 성장에 따라 불평등도가 감소한다)이 현실과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쿠즈네츠 가설을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시장자본주의의 내생적 모순과 한계로 자본수익률을 문제 삼은 것에 대한 위안으로 삼아 왔다.

피케티는 이 논문에서 소득상위 10%에는 고액연봉의 근로소득이 포함돼 있지만 소득상위 1%의 소득 대부분은 자본소득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또 1970년대 이후 소득상위 10%의 소득불평등도 증가를 대부분 최상위 1% 계층에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

이 같은 발견은 그가 30대 초반부터 세금 신고자료를 꼼꼼히 들여다보는 실증분석연구에 힘써 얻어낸 결과다. 단순 이론모형을 설정하고 제약된 가정 아래 수리적으로 도출 가능한 결론을 낸 뒤 이것을 학술지에 발표하는 일반적인 경제학자들의 연구 스타일과 달라 신선함이 느껴진다.

한국의 부유세는 ‘종부세’가 고작

피케티 열풍은 각국이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불어나는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부자 증세를 검토하는 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매년 100만 달러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 5만5,000명이 중간소득자보다 더 낮은 세율을 적용 받는 현실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해 프랑스 대선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후보가 100만 유로 이상 소득자에 대한 75% 소득세율구간 신설을 주장했다. 두 나라는 현재 세기 자본론 에 대한 관심이 특히 대단하다. 필자가 이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포럼의 분과별 회의에 참석했을 때도 불평등도를 낮추면서 지속적 성장을 유도하는 정책에 대한 회원국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피케티 열풍은 탈규제로 치닫는 금융시스템이 얼마나 위험한지, 빚더미의 가계가 집값 하락에 얼마나 취약한지, 세계적 금융위기가 다가 오는지를 왜 몰랐는지 하는 기존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주류 경제사상에 대한 반성 그리고 대안을 향한 갈망의 산물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부유세라면 ‘종합부동산세’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필자가 2008년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및 위헌 판결을 받은 주택분 종부세의 성격을 재규명하는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국내의 종합부동산세는 세제 설계 의도와 달리 누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내에 좀 더 강한 성격의 부유세를 도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따져봐야 문제들이 있다. 그리고 그 논의는 기존의 관련 조세들인 양도소득세, 임대소득과세, 상속증여세, 그리고 지방재산세에 대한 조세개혁과 병행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노영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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