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사라졌다.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모습 얘기다. 타고 있던 객차는 유리창이 아래 위 두 칸으로 나뉜 구형 모델이었다. 아래쪽 큰 유리는 틀에 고정되어 있고 위쪽 작은 유리는 윗부분을 당겨서 여는 틸트 방식 창문. 열린다고 해서 열려 있는 걸 본 적은 없는데, 급정차의 충격 때문인지 하필 그때 살짝 열리며 아래 위 유리 사이에 미세한 각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각이 감쪽같이 목을 없애버렸다. 어깨 위에 덜렁 머리통만 얹힌 모습이 우스웠다. 발끝을 들어보았다. 목이 나오는 대신 어깨가 사라졌다. 팔이 몸통에서 떨어져 따로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래 전 TV에서 보던 마술쇼가 떠올랐다. 매직박스에 들어가 마술사의 칼질에 스스럼없이 몸을 맡기던 여자들. 토막 난 상자 속에서도 여자는 방글방글 웃으며 구멍 밖으로 내민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거렸고, 상자가 재조립되면 짜잔, 건재한 몸으로 인사를 건넸지만, 그런 프로그램을 본 날이면 으레 잠자리가 사나웠다. 토막 난 몸이 다시 붙지 않으면 어쩌지? 상자의 순서가 뒤바뀌어 머리가 배꼽 위에 올라앉으면? 눈속임이 있을 거라는 걸 몰랐던 건 아니나, 이불 속에서 뒤척이고 있노라면 이런 상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어지럽던 상상이 지금 차창에 비친 것만 같다. 사라진 목을 만져본다. 사라진 어깨를 으쓱 해 본다. 전동차가 환승역에 닿는다. 우르르 들고나는 승객들에 밀려 내 모습이 통째로 사라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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