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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출신 로펌변호사, 법조계 경조사 모두 꿰뚫어 수십억 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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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출신 로펌변호사, 법조계 경조사 모두 꿰뚫어 수십억 연봉

입력
2014.05.26 03:00
0 0

<!> 관료와 후원자, 고리를 끊어라

대형로펌들 승소율 높이려

사법관료들 모시기 경쟁

2012년 퇴직 판·검사

125명 중 62명 로펌行

로펌 가선 현직 선후배 후원

행정부처도 마찬가지

기업들 직원 학연 등 동원

술·골프 접대하며 관리

더 큰 부정으로 가는 첫걸음

국내 한 대형로펌에 파트너급(대기업 임원급)으로 영입된 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 D변호사. 그는 검찰ㆍ법원 관료들의 네트워크를 줄줄 외우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와 친분이 있는 법조인 E씨에 따르면 D변호사는 지난 10년 동안의 법원 인사는 물론 판사들을 중심으로 어떤 로펌에 어떤 변호사와 친하고, 둘 사이의 친분으로 어떤 사건이 해결됐는지 모두 꿰고 있다. E씨는 “가장 놀라운 건 D변호사의 경조사 관리능력”이라며 “그가 만든 법조계 관련 경조사 데이터에는 현직 판검사들의 출신, 학력, 정치적 성향, 정재계 친분 등과 관련한 정보가 들어있고 이는 해당 로펌의 파트너급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사실상 로펌 차원에서 관리된다”고 말했다.

D변호사는 종종 사법부 관료들의 회식에 참석하고, 인사 때 난을 보내며,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어 친분을 유지한다. 이 같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덕분에 D변호사는 현직 관료를 통해 알게 된 사건을 수임하고 있다. 그런 건수가 한 달에 최소 10여건에 달한다. 그는 현재 로펌 파트너 중 최고액인 수십억원대 연봉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의 관민 공생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바로 법조계다.

1970, 80년대 기업자문 영역을 개척하면서 성장한 국내 대형로펌들은 2000년대 들어 민형사 송무(소송업무) 분야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법원과 검찰 출신의 고위 관료들을 무더기로 영입했다. 실제 2012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그 해 퇴직한 판사와 검사의 125명 중 절반에 가까운 62명이 로펌에 재취업했다. 서울중앙지검 현직 검사는 "한 때 모셨던 부장검사가 로펌에 간 이후 사건과 관련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는 건 물론이고 동기인 검사장을 통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귀띔했다.

로펌이 전직 사법관료들을 대거 영입하는 것은 그만큼 효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곧 승소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시 주요고객인 대기업과 부자들로부터 막대한 자문료 및 수임료, 성공보수를 챙길 수 있다는 뜻이다. 로펌행을 택한 전직 관료들이 현직 선후배 사법관료들을 후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자신들을 공격했던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관료들을 줄줄이 영입해 방패로 활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법관료들도 로펌이나 대기업의 후원과 구애가 싫을 리 없다. 기수(期數) 문화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법원ㆍ검찰에서 치열한 인사 경쟁에서 밀려난 경우 관료들이 우선적으로 눈을 돌리는 곳은 십중팔구가 로펌이나 대기업이다. 때문에 사건 처리 결정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중간 사법간부들은 자신의 경력에 ‘보험’을 들기 위해서라도 로펌과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선후배와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아주 난감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입지를 미리 확보해 놓는 것이다.

다른 부처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관료와 민간에 진출한 관료 출신들이 서로 후원하는 것을 모든 부처에서 당연시할 정도다. 민간이나 공공기관으로 갈아탄 ‘관피아’들이 현직 관료 선후배들을 챙기고, 현직 후배들은 퇴직 선배의 자리를 놔주는 식이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이른바 모피아들이 금융공기업이나 각종 금융협회 수장을 독식하는 것은 이런 끼리끼리 문화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해운조합과 선주협회 등의 고위직을 차지한 해양수산부는 물론이고, 국토교통부, 환경부, 농림축산수산부, 식약처 등의 퇴직관료들이 산하협회나 기관을 장악한 것도 역시 관료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준 결과다. 관피아와 관료의 유착관계는 점점 더 끈끈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기업들도 관료들을 은밀하게 ‘관리’한다. 일단 어떻게든 선을 닿는 것으로 시작해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면서 관계를 유지한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대관업무를 맡고 있는 F씨. 일주일에 2, 3회 세종시 정부청사를 찾아가 관료들과 만나는 일이다. 대부분 공무원들과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면서 들은 정보를 보고서로 작성해 회사에 제출한다. 그의 달력에는 이미 10월말까지 모든 주말이 골프약속으로 채워져 있다. 세월호 사고로 6월말까지는 모두 취소됐지만, 이후의 것은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2년 전 처음 대관업무를 맡았을 때, 그는 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까지 학연이 연결되는 모든 공무원과 접촉했고, 심지어 회사 홍보실을 통해 기자를 소개받아 관료들에게 줄을 댔다. 그는 “점심, 저녁을 수시로 먹고, 한 달에 두세번씩 골프를 치면서 관계를 형성한 공무원들이 다른 공무원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며 “서로 부담 없는 선에서 명절에는 선물을, 휴가철에는 휴가비를 지원하는 등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F씨가 주로 접촉하는 관료들은 주로 과장(4급)들부터. 후배들을 챙기거나 대외적인 활동이 늘어나는 시점이어서 후원을 통해 친밀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후원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전혀 모르던 사람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학교 동창이거나 지역 연고가 있는 이들이다. 때문에 이들로부터 접대를 받는 것을 업무와 연관시키기 애매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간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돈을 많이 버는 이들이 공공 영역에서 적은 보수로 일하는 관료 친구나 선후배에게 밥 한끼, 술 한잔을 사거나 골프 비용을 대주는 것을‘미덕’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있다. “친구를 위해 밥 한 끼 사는 게 뭐가 문제냐”는 항변이다.

하지만 이런 후원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료들의 인식은 더 큰 부정으로 이어지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파트 구입에 수억원을 지원받은 사실이 밝혀져 낙마한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 희대의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등으로부터 10억원의 뇌물을 받은 김광준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 등 각종 스폰서 검사 사건은 물론 최근 대기업이나 금융회사, 법무ㆍ회계법인 등으로부터 수십만, 수백만원에 이르는 금품ㆍ향응, 골프 접대를 제공받은 청와대 행정관들 사건 등 잘못된 스폰서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고 사회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 되돌아 봐야 할 때다.

공직자 개인 차원에서는 ‘어차피 누군가에게 주어질 이권이라면, 자격도 다른 경쟁자에게 뒤지지 않는 지인에게 돌아가도록 약간의 힘을 쓰는 정도는 사회 전체적으로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모여 폐쇄적 인맥이 구축되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공직자가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을 경우 대가성이 없더라도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 법)의 원안 통과는 공직자와 후원자간의 음습한 유착관계를 없앨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란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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