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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의 편가르기와 한반도 운명

입력
2014.05.25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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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온 국민의 이목이 진도 앞바다에 집중됐던 지난 한 달여간 아시아 정세는 미중일러 정상들의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긴박하게 요동쳤다.

포문을 연 것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었다. 집권 2기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그는 지난달 23일부터 1주일간 아시아 4개국을 누비면서 미국의 아시아 복귀 선언이 결코 공언이 아님을 과시했다. 중국을 포위한 듯한 순방국엔 우리나라와 말레이시아, 필리핀도 있었지만 방점은 역시 일본에 찍혔다. 실제로 그는 방일 기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공식 지지하고, 중일간 영유권 분쟁이 한창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서도 미일 안보조약 적용 대상임을 확인했다. 이는 미일 동맹 강화가 사실상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무장을 일부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발끈한 중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양국은 지난 20일 이어도와 멀지 않은 동중국해 북부 해역에서 ‘해상연합-2014’란 이름으로 합동 군사 훈련을 시작했다. 26일까지 이어지는 이 훈련엔 14척의 함선과 잠수함, 항공기, 헬기 등이 동원되고 있다. 중국은 제3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한미 또는 미일 연합 군사 훈련에 맞대응한 것이란 건 자명해 보인다. 개막식엔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보란듯이 함께 참석했다.

중국은 나아가 아시아의 새로운 안보 협력 기구까지 만들자고 제안하고 나섰다. 시 주석은 지난 21일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정상회의에서 “아시아의 일과 문제는 아시아인들의 손으로 처리할 것”을 주문했다. 이는 아시아 국가도 아닌 미국에게 더 이상 아시아의 안보를 맡길 순 없다는 얘기다. 그 동안 아시아의 대장 노릇을 해 온 미국과 일본을 배제한 채 이젠 중국 중심으로 새로운 아시아 질서를 만들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숙제를 안았다. 시 주석의 제안은 이번 CICA 회의에 참석한 11개국 정상들 앞에서 이뤄진 것이긴 하지만 CICA의 26개 회원국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도 해당되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사실상 앞으로도 계속 미국 편에 서 있을 것인지 아니면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안보 질서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것인지 우리의 선택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르면 내달말 이뤄질 시 주석의 방한에서 중국은 그 답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아시아 정세가 미일과 중러의 양대 진영으로 극명하게 갈리면서 한반도의 운명은 다시 거대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는 형국이다. 역사적으로 4강의 대립이 첨예해질 때마다 한반도는 비극의 현장으로 전락하고, 한민족의 운명은 우리의 뜻과는 무관하게 결정되곤 했다. 미국과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상호 인정하며 맺은 1905년 태프트-가쓰라 밀약, 미국과 소련이 사실상 한반도에 대한 신탁 통치를 결정한 1945년 얄타회담 등이 그 예다.

더구나 지난 1월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는 미중이 2009년에도 급변 사태를 포함한 북한의 전반적 문제를 논의한 사실을 확인했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지난 13일 “중국 정부와 모든 종류의 북한 비상사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중간 논의에 우리가 참여했다는 소식은 안 들린다. 한미중 전략 대화가 지난해 시작되긴 했지만 진전은 더딘 상태다. 우리의 운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 우리 어깨 너머에서 강대국만의 논리로 또 다시 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세월호 사태에 탑승자 가족과 국민이 분노한 것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바로 눈 앞에서 보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국가와 정부의 무능력과 직무유기 때문이다. 아시아 정세가 소용돌이치며 한반도의 운명도 지금 비상 상황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 판단과 현명한 대처, 4강과의 외교가 절실한 때 또 다시 무능력과 직무유기를 확인시켜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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