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상황과 다른 의학드라마지만 흡사한 상황도 많아
'사망환자 증례 보고회'처럼 세월호 재발 방지대책 마련해야
의사들이 환자 침상을 밀며 급하게 뛰어가는 장면은 의학드라마에서 긴급함을 표현하기 위해서 흔히 등장한다. 그런데 실제 병원에서는 이렇게 의사들이 뛰어다니는 경우는 없다. 지각한 학생들이나 콘퍼런스에 늦은 전공의들이 뛰긴 하지만, 환자 때문에 뛰는 것은 아니다. 응급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의료진이 현장에 마련되어 있는 의료기구를 이용해서 즉각적인 처치를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환자들 때문에 의사들이 수시로 뛰어다녀야 하는 병원이라면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의사와 병원의 사실감을 제대로 그려낸 의학드라마는 2007년의 ‘하얀 거탑’이었다. 일본작가 야마자키 도요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수술장면 등 병원에서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드라마였다. 우리와는 다른 일본식 체계이긴 하지만, 병원의 권력 암투 과정과 주인공의 의료사고, 암에 걸려 사망한다는 구성이 꽤 사실적이었다. 단지 김명민과 차인표의 수술 경쟁 장면은 현실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옥에 티라고 할 수 있다.
하얀 거탑 외에도 ‘외과의사 봉달이’, ‘브레인’, 그리고 최근의 ‘닥터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의학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외과계열 의사이다. 외과가 드라마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 좋고, 수술장면의 사실감과 볼만한 화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겠지만, 사실 분초를 다투는 위급환자는 심장마비나 협심증, 쇼크 등 내과계열 질환이 더 많다. 수술장면도 실제로 병원의 수술장을 이용하고 특수효과를 이용해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외과의들의 몸에 저절로 배어있는 몸짓 등에 있어서는 엉성한 모습이 많다. 수술대에 선 의사가 마스크나 모자를 만지는 행동은 불결함 때문에 절대로 하지 않는다. 수술 모자나 마스크, 수술복이 같은 색깔이어서 모두 소독이 되어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하는 세심치 못한 연기인데, 의과대학 학생들이 수술장 실습에서 잘못해 야단맞는 행위이기도 하다.
의학드라마가 보통 1~2개 과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까, 진료에 필수적인 다른 과들에 대한 배려가 없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병원이란, 특히 종합병원에는 환자의 진료를 위해 수많은 부서가 존재하고, 드라마에서는 등장하지도 않는 진단검사의학과와 영상의학과, 병리과, 핵의학과 등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는 의사와 간호사 이외에도 전문기사, 영양사, 약사, 원무 직원, 행정직 등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곳이 병원인 것이다.
상당수의 의사는 의학드라마가 현실감이 없고 단지 의사가 주인공이고 병원이 무대일 뿐 야망이나 정치, 애정을 다룬 드라마로 생각하고 잘 보지 않는다. 병원도 하나의 사회로 정치적, 인간적 갈등과 애정 관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는 것은 아니고 환자와 질병이 본질이므로 병원에서의 일상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일어난다. “이런 사례는 해외논문에서만 봤어.”, “10년에 한 번 볼까 하는 환자야”라는 이야기가 오가고, 드라마 이상으로 긴장감이 넘쳐나는 곳이 병원이다. “위험합니다. 빨리빨리 수술해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주온이라는 전공의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모든 의사는 위급성이 판단되면 누구보다 서둘러 수술을 진행하는 굿닥터가 된다.
실제와는 다른 점이 더 많은 의학드라마이긴 하지만 가장 흡사한 상황이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환자가 사망하게 되면 열리는‘사망환자 증례 보고회’이다. 물론 드라마에서처럼 병원장이나 전혀 관계가 없는 간부가 참석하여 윽박지르거나 하지는 않고 관련이 있는 모든 의료진이 참석한다. 이 회의에서는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요인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분석하고 설사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고 논의하는 자리이다.
우리 국민 모두를 침통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마무리가 아직도 되지 않고 있다. 사망환자 증례 보고회와 마찬가지로 사고 발생에 대한 문제점과 구조 실패 요인을 사실 그대로 정확하게 분석하고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