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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개조, 국민 합의가 중요하다

입력
2014.05.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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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세종대 교수ㆍ한국도시연구소 소장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4일째가 되는 날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국민에 대한 사과와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담화문은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이 많다.

우선, 청와대가 개혁의 중심이며 주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해당 부처나 관련 단체, 국회와 어떻게 합의를 도출할 것인지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 관련 법률의 제정 및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니 국회에서 처리해주기를 바란다는 식이다. 둘째, 기존 관행과 단절하고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 비정상이며 그것을 누가 판단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셋째, 공공부문을 개혁의 최우선적인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조직을 개편할 뿐만 아니라 행정관료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무사안일의 관행을 혁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넷째, 구체적인 대책을 확정적으로 발표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적인 합의나 실무적인 검토를 거쳐 마련되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두 담화문이 이렇게 많은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정부가 국가개조를 부르짖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국정의 기조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세월호 참사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만 제대로 추진되었더라면 방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선박 등에 대한 과도한 규제 완화가 이번 사건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임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여전히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투자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규제개혁뿐 입니다”라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의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마련해야 하는 대책은 크게 5가지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의 대책은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묻는 일이다. 사건 수사나 특별위원회 활동, 백서 제작 등을 통해 침몰, 구조 실패, 재난대응시스템 미작동의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재발방지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 단계의 대책은 재난에 효과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행정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일이다. 해양경찰을 해체하고 해양수산부와 안전행정부의 기능을 축소하고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방안이 여기에 해당하지만,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세 번째 단계의 대책은 관료제 운용 시스템을 개편하고 폭넓게 인재를 확충하여 전문성을 강화하는 일이다. 이번에 관피아를 극복하고 폭넓게 민간전문인력을 확충하는 방안이 발표되었다. 네 번째 단계의 대책은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과 관련해 다양한 주체의 참여를 보장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국정운영 시스템을 재편하는 일이다. 좁게는 청와대의 독선적인 의사결정 체제를 완화하는 것이며, 넓게는 지방분권과 다양한 주체의 국정 참여를 보장하는 일까지 포함된다. 다섯 번째 단계의 대책은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가치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그동안 효율과 속도, 성장과 개발, 개방과 수출 등 외형적인 규모와 팽창에 최우선적인 가치를 두어왔던 국정이념을 재성찰하고 합의를 거쳐 새로운 국정이념을 설정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담화에서 발표한 대책은 대부분 첫 번째에서부터 세 번째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라는 엄청난 희생을 통해 국가의 운영시스템과 추구하는 가치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인식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전국에서 열리는 촛불 추모집회에서는 바로 이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개혁이든 국가개조이든 중요한 것은 슬로건이 아니라 국정의 새로운 가치를 위한 국민적 합의 도출의 과정과 주체이다.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는 누가 구분할 것이며, 어떤 절차를 거쳐 좋은 규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종전과 마찬가지로 국민과 공감하지 못한 채 국민의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권력이 규칙을 일방적으로 정한다면 정당화될 수 없다.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크지도 않고 멀리 있지도 않다. 그동안 성장, 경쟁,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희생되었던 공동체, 주거안정, 생명,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도록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시민사회권력이 네트워크를 통해 연대하고, 늘 깨어서 감시하고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권력에 순응하는 국민개조의 대상이 되지 않고 국가권력을 개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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