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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사찰 전말' 최후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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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사찰 전말' 최후의 고백

입력
2014.05.2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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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시절 자행됐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 실상을 폭로했던 장진수 전 주무관. 지난해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확정받아 현재 공직을 떠난 상태다. 홍인기 기자
이명박 정부시절 자행됐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 실상을 폭로했던 장진수 전 주무관. 지난해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확정받아 현재 공직을 떠난 상태다. 홍인기 기자

“대한민국에 잠재적 장진수 많다”

“검찰은 청와대와 조직 보호기관…

왜곡보도 언론에도 굉장히 실망”

“검찰은 공소장이라는 공문서를 통해 합법적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기관 같습니다. 검사들에게 자기 반성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자행된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 실상을 폭로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 장진수(41) 전 주무관이 사건의 이면을 생생히 기록한 책 [블루 게이트](오마이북 발행)를 펴냈다. 증거인멸의 실행자로 피고인이 돼 법정에 섰지만 ‘몸통은 둔 채 깃털만 뽑고 끝난’이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 장씨는 책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권력기관의 치부와 그동안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상세히 공개했다.

특히 청와대와 정치권, 검찰과 법원, 언론을 향한 그의 일침은 또 다른 폭로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는 대한민국 곳곳에 ‘잠재적 장진수’가 많다는 것을 힘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진실과 부조리를 알리고 싶은 사람이 저뿐이겠나. 다수가 침묵하고 있는 현실을 권력자들이 잘못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 23일 두 차례 장씨를 만나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사건에 대한 ‘최후의 고백’을 들어봤다. 그는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증거인멸 행위에 대한 집행유예 형이 확정돼 공직을 떠났다.

-블루 게이트란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여러 의미가 내포돼 있다. 먼저 블루(Blue)는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사건의 배후가 청와대라는 뜻을 암시하고 있다. 결코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우울한(blue)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는 점도 제목을 정하는 데 영향을 줬다.”

-‘게이트’는 왜 들어갔나.

“처음부터 이 사건은 ‘한국판 워터게이트’라고 생각했다. 워터게이트 사건도 불법사찰 사건과 마찬가지로 도청과 사찰, 거짓으로 점철됐고 증거인멸도 이뤄졌다. 차이점을 말하자면 미국에서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닉슨 대통령이 물러났지만, 불법사찰 사건의 경우 ‘꼬리 자르기’로 끝났다는 것이다.”

-사건 당사자로서 책을 쓰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점은.

“불법사찰 사건에는 이 시대의 암울한 분위기가 반영돼 있다. 방식만 바뀌었을 뿐 군사정권 시절의 자기검열 시대로 회귀했다. 실제로 지금 정부를 비판하면 선동한다고 하지 않나. 그 발단이 바로 불법사찰 사건이다.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사건 등도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당시 고위 공직자는 어떤 사람들이었나.

“청와대는 당시 능력 불문하고 출신 지역만 따졌다. 책에도 썼지만, 그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정권에 충성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사리사욕만 챙겼다. 충신인지 무능력자인지 구분도 못하고 발탁한 윗선의 책임이 더 무겁다.”

-두 차례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검찰과 법원에 대해 느낀 바가 컸을 것 같다.

“(큰 목소리로) 상당히 많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게 결국 그런 거다. 검찰은 정권과 조직 보호라는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검찰이 2010년 1차 수사를 잘못했다는 게 재수사를 통해 밝혀졌는데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 드러났는데도 전혀 반성을 안 하더라. 제가 폭로하지 않았다면 청와대가 연루된 사실은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검찰이 결국 청와대를 보호하려는 조직으로밖에 안 보였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공소장이라는 공문서를 통해 사건 은폐와 조작을 합법적으로 하는 기관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법원도 마찬가지인가.

“법원에 대해서는 서운하다. 제가 증거를 인멸한 잘못은 있지만 그것은 사건을 은폐하려는 윗선의 지시로 이뤄진 행위였다. 하지만 나중에 저의 폭로로 사건의 진상이 상당부분 드러난 만큼 정상참작을 해 주기를 바랐는데 안 되더라. 그것 때문에 서운하다는 거다. 결국 법원은 저 같은 내부 고발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판결을 통해 던진 것 같다. 최후의 보루라는 법원에서도 구제해 줄 건 없다는 거니까. 암울하다.”

-내부 고발자들이 공익을 위한 일을 하고도 고초를 겪는다.

“절실하게 동감한다. 제가 폭로한 걸 후회한 적은 없다.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면 오히려 심적으로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거다. 하지만 누군가 뭔가를 폭로하겠다고 제게 상의하러 온다면 자신있게 하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대한민국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폭로 이후 많이 힘들었겠지만 보람도 있지 않았나.

“옛 직장인 총리실 직원들과는 사실상 관계가 끊어졌다. 하지만 제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은 큰 보람이다. 아무 대가 없이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보며 우리사회가 아직은 건전한 상식이 통하는 곳이라고 느꼈다. 변호사들과 시민단체, 언론인들이 있었고 저와 전혀 인연이 없었던 조국 교수님과 명진 스님, 정연주 전 KBS사장님도 격려를 해줬다. 정말 큰 힘이 됐다.”

-책은 언제 어떻게 쓰게 됐나.

“지난해 11월 대법원 확정 판결(증거인멸 유죄)을 받은 후 페이스북에 ‘장진수 이야기’란 제목으로 연재를 했다. 그 때는 제가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인기가 좀 있었던지 출판사에서 제의가 왔다. 어떻게든 이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 집필을 결심했다.”

-책은 어떻게 구성돼 있나.

“이명박 정부 당시 공직사회 분위기와 제가 공무원으로서 경험한 일들, 불법사찰 사건의 증거인멸 과정, 검찰 수사와 재판, 그 과정에서 받은 회유와 협박, 폭로 이후 상황 등 5개 주제로 나눠 엮었다. 한국일보 법조팀이 지난해 펴낸 책 [민간인 사찰과 그의 주인]도 많이 참고했다. 사건 기록이 워낙 방대해 필요한 부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에 팩트가 잘 정리돼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가족들이 폭로를 말리지 않았나.

“아버지는 굉장히 보수적인 분이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제 사건을 지켜보면서 보수 진영이 잘못하고 있다고 명확하게 인식하시게 됐다. 폭로 전에 아버지께 상의했는데, 전혀 말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굉장히 분개했다. 마음 굳게 먹고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아내도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 줬다.”

-불법사찰 사건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나.

“공무원 시절에는 정치적 중립이란 틀에 매여 세상 일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큰 일을 겪고 보니 청와대나 고위 공직자, 국회 높은 분들의 말이 정말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거짓말을 참 많이 하더라.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물불을 안 가리고. 공직에 있을 때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국가에 충성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이 국가는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도 욕을 많이 먹는다. 불법사찰 사건 당시 언론의 행태는 어땠나.

“검찰이 2010년 1차 수사를 덮었는데도 당시 진실을 파헤쳐 제대로 보도한 언론이 없었다. 2012년 재수사 과정에서 보도 행태를 보고 언론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졌다.”

-결정적인 이유가 뭔가.

“불법사찰 사건은 MBC ‘피디수첩’을 통해 처음으로 알려졌다. 특종을 한 셈인데 그렇다면 후속 보도도 열심히 해야 할 텐데 수사 기간 내내 유일하게 저한테 연락도 안 했던 언론사가 MBC였다. 재수사 끝난 다음주에 연락 와서 인터뷰 하자고 하더라. 진실이 밝혀지길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권을 위한 언론, 정권에 휘둘리는 매체 같았다. 김재철 전 사장 시절이었는데 그런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다른 매체들은 어땠나.

“MBC 말고 다른 방송사나 거대 신문사의 횡포도 정말 심했다. 팩트에 대해 한 시간 동안 설명을 했는데, 밑도 끝도 없이 앞뒤 자르고 “억울하다”는 말만 내 보내더라. 전혀 엉뚱한 맥락으로 보도가 되다 보니 굉장히 힘들었다. 적지 않은 언론사들이 정치적 유ㆍ불리를 따져 의도적으로 사건을 재단하는 것 같았다. 일부 신문사는 사실 보도는 둘째치고 오히려 절 음해하는 기사를 많이 썼다. 기자에게 항의했더니 ‘기사에 이름은 달렸지만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말하더라.”

-책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장진수가 이 책의 주인공이지만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장진수가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직장인과 공무원 모두 ‘잠재적 장진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침묵하는 다수가 있을 뿐이다. 정치인들은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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