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펀드 환매 러시가 시작됐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자 기다렸다는 듯 펀드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선 것. 이 물량은 모두 외국인이 받아주고 있다. 지수 2,000 전후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외국인과 기관(펀드)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는 늘 외국인의 승리였다. 이번엔 어떨까.
5일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코스피가 2,000을 돌파하고 연중 최고치를 잇따라 경신한 14~21일 국내 주식형펀드(상장지수펀드 제외)에서 1조2,625억원어치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일반 주식형펀드에서 가장 많은 6,008억원, 기타 인덱스펀드에서도 2,784억원이 순유출됐다.
펀드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가면서 21일 기준 국내 주식형펀드 전체 설정금액은 67조6,937억원으로 올 들어 가장 낮았다. 연초 이후 빠져나간 관련 자금만 3조5,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이 기간 펀드 등을 운용하는 투신권은 유가증권시장에서 6,277억원을 순매도해 기관 순매도(9,312억원)를 주도했다. 펀드 투자자들이 그간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작정하고 나선 것이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가 1,950~2,000 박스권에 오래 갇혀 있다가 고점을 찍으니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펀드환매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도 코스피가 2,000을 넘으면 펀드 환매가 심했다. 최근 3년간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환매된 금액 67조5,000억원 가운데 코스피가 2,000 전후(1,975~2,025)일 때 환매된 금액은 40%(26조9,000억원)에 이른다. 코스피가 2,000에 가까워질수록 추가 상승보다 하락에 베팅해 펀드를 팔아 치웠다는 얘기다.
김후정 동양증권 연구원은 “지수가 1,999나 2,001일 때 수익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2,000을 넘어서면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환매에 나서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지수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외국인 덕분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3~23일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2조4,728억원어치를 사들이며 기관이 토해낸 펀드 환매 물량을 소화했다.
특히 13일 불거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건강문제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기대가 커지면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등 삼성그룹 관련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같은 기간 기관(9,132억원 순매도), 개인(1조5,020억원 순매도)과는 정반대 행보다. 외국인 매수세 덕에 23일 코스피지수는 2,017.17로 연중 최고치로 마감했다.
팔려는 자와 사려는 자의 팽팽한 균형이 이뤄지면서 코스피는 2000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 삼성그룹 주식에 편중돼 있긴 하지만 실적 호조 등 국내 시장을 선호하는 외국인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며 “펀드 환매도 점차 규모가 줄어들면서 지수가 하반기 2,060선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영일 대신증권 연구원은 “지수를 받쳐주고 있는 외국인이 한국 투자 비중을 어디까지 늘리느냐에 따라 지수가 정해질 것”이라며 “2,000 안착은 가능하지만 상승 속도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둘의 승패를 장담하긴 어렵지만 당분간 외국인 우세가 예상될 것으로 보인다. 예전처럼.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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