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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벗겨진 폐가와 현대 텍스타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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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벗겨진 폐가와 현대 텍스타일의 만남

입력
2014.05.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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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장응복이 티룸으로 꾸민 작은 방에 앉았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디자이너 장응복이 티룸으로 꾸민 작은 방에 앉았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에 있는 통의동 보안여관은 지은 지 80년도 더 된 2층짜리 작은 건물이다. 칠이 벗겨지고 벽지가 떨어져 나간 좁은 방과 천장에는 먼지가 수북하다. 외벽과 뼈대만 남아 화장실도 없는 이 집은 2004년까지 여관으로 사용되다가 2009년부터 주로 실험적인 미술작업을 소개하는 전시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미당 서정주가 1936년 국내 첫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을 만든 곳이기도 하다.

낡은 보안여관이 부티크 호텔로 변신했다. 텍스타일 디자이너 장응복(53)이 자신만의 독특한 인테리어 방식으로 건물 내부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부티크 호텔은 규모는 작지만 건물과 인테리어, 서비스가 독특하고 개성 있는 호텔을 가리킨다.

‘장응복의 레지던시’라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보안여관의 비좁은 방들을 침실, 식당, 접견실, 티룸 등으로 각각 꾸몄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에 나오는 첩첩 산봉우리, 민화의 모란꽃 등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 패턴으로 변주해서 프린팅한 커튼과 벽가리개를 복도와 창, 천장 곳곳에 늘어뜨렸다. 방에는 이불, 방석, 베개 등 침구와 자개장 상판으로 제작한 낮은 탁자, 오래된 생활 목가구 등을 집어 넣었다.

장응복의 부티크 호텔은 지난해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도 ‘도원몽’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 적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양식의 화려함으로 구성했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숨 쉬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을 연출했다. 폐가나 다름없는 실내를 그대로 놔둔 채 전통과 현대, 실용적인 아름다움을 결합한 작품들을 섬세하게 배치했다. 복도를 걷고 천장을 올려다 보고 방 안을 들여다 보면서 관객들은 각 공간이 들려주는 어떤 이야기들을 상상할 수 있다. 전시는 6월 3일까지 한다.

오미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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