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이 사랑해온 세일란의 ‘윈터 슬립’ 최고 영예
줄리안 무어와 티모시 스폴은 남녀배우상 받아
칸국제영화제의 편애는 여전했다. 칸이 사랑해온 터키 감독 누리 빌제 세일란의 영화 ‘윈터 슬립’이 25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제67회 칸영화제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대상)을 품었다. 터키 감독으로는 ‘욜’(1982)의 일마즈 귀니 이후 두 번째다. 세일란은 칸영화제 이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상을 두 차례, 감독상을 한 차례 각각 받은, 칸이 사랑해온 감독이다.
‘윈터 슬립’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영화제 초반부터 점쳐졌다. 16일 첫 공개된 이 영화는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보기 드문 호평을 받았다. 시사회에 참석한 기자들과 평론가들은 영화가 끝난 뒤 극장을 빠져나가면서도 박수를 칠 정도로 이 영화에 열광했다.
‘윈터 슬립’은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스탄불에서 연극 배우로 일했다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숙박시설을 운영하며 여생을 보내는 남자 아이딘이 주인공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으로 아무런 물질적 어려움 없이 살아온 아이딘이 귀향 뒤 가족이나 가난한 주변 사람들과 만들어 내는 갈등이 스크린을 채운다. 가진 자의 위선과 빈부의 정신적 간극을 그려내며 터기 사회의 우울한 현실을 묘사하는 연출력이 섬세하다.
눈 내리는 산간 풍경 등 장대한 자연이 그대로 스크린에 자리 잡은 듯한 인상적인 장면들이 3시간 16분 동안 시각을 압도한다. 세일란 감독은 24일 오후 시상식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각본을 쓸 때 상업적인 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아내와 함께 소설 같은 각본을 만들다 보니 상영시간도 길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인간본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 때에만 연출하고픈 동기가 생겨나곤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작가 출신인 세일란 감독은 1997년 데뷔작 ‘카사바’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세 번째 영화 ‘우작’(2002)은 그를 세계적 대가로 만들었다. 유명 사진작가를 렌즈로 삼아 터키의 지역 격차를 들여다본 작품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세일란 감독은 ‘기후’(2006)에선 직접 주연을 맡아 감춰진 연기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이후 ‘쓰리 몽키스’(2008)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2011)로 심사위원대상을 각각 받았다. 칸영화제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사랑해온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칸영화제는 애정을 쏟아온 감독들의 작품을 곧잘 경쟁부문에 초대해 상을 안겨줘 왔다. 세일란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칸의 ‘편애 전통’이 새삼 확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일란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처음 품은 반면 칸영화제 단골 수상자들인 장 뤽 다르덴ㆍ피에르 다르덴 형제 감독(‘투 데이스, 원 나이트’)과 켄 로치 (‘지미스 홀’)감독은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이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은 이탈리아 여성 감독 알리스 로르바흐의 ‘더 원더스’가 차지했다. 세계가 곧 멸망할 것이라는 염세주의자 가장 때문에 그의 식구들이 어느 여름에 겪는 사연을 담은 영화다. ‘더 원더스’의 수상엔 여성 감독인 제인 캠피온 심사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따른다.
할리우드 영화 ‘폭스캐처’의 베넷 밀러 감독은 최우수감독상을 안았다. ‘폭스캐처’는 미국의 억만장자 존 듀폰이 1996년 유명 레슬링 코치를 살해한 실화를 담고 있다. 코미디 배우 스티브 카렐이 정신적인 문제를 지닌 듀폰을 연기하고 할리우드 스타 채닝 테이텀이 단순 과격한 레슬링 선수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다. 밀러 감독은 ‘카포티’와 ‘머니볼’로 할리우드에서 연출력을 인정 받았으나 칸영화제 수상은 처음이다.
심사위원상은 최연소로 경쟁부문에 진출한 캐나다 감독 자비에 돌란(25)의 ‘마미’와 이번 영화제 최고령 감독인 장 뤽 고다르(84)의 ‘굿바이 투 랭귀지’가 공동 수상해 눈길을 끌었다.
최우수남녀배우상은 ‘미스터 터너’(감독 마이크 리)의 티머시 스폴과 ‘맵스 투 더 스타스’(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줄리앤 무어가 각각 차지했다. 최우수각본상은 러시아 영화 ‘리바이어던’의 안드레이 즈뱌긴체프 감독과 올렉 네긴에게 돌아갔다.
신인 감독을 대상으로 한 황금카메라상은 프랑스 마리 아마슈켈리 감독의 ‘파티 걸’이, 주목할만한 시선상은 헝가리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의 ‘화이트 갓’이 각각 차지했다.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는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과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올랐으나 아무 상도 받지 못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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