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영향력 벗어나
책임총리제 구현 의문
둘 다 강성 검사·PK 출신
모양새도 좋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정국을 수습할 인적 쇄신 카드로 안대희 총리 후보자를 전격 기용하면서도 김기춘 비서실장은 유임시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김 실장의 유임은 안 후보자 카드를 무력화시키는 요소가 많아 쇄신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안 후보자 기용이 여론의 기대치를 높이는 것은 무엇보다 소신형 총리의 등장이다. 그간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식 국정 운영으로 내각이 무기력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내각이 소신껏 책임지고 일하기 보다는 대통령 눈치만 보는 분위기가 팽배했고, 이것이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에서도 무력한 대응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대독총리’ ‘방패 총리’ 아래 모인‘받아쓰기 내각’이란 오명도 받았다.
이런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에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책임 총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권 내에서도 제기됐다. 박 대통령이 한때 자신과 갈등을 빚기도 했던 안 후보자를 기용한 것도 이런 여론을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김 실장을 남겨둠으로써 실제 책임총리제가 구현될지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김 실장은 안 후보자의 사시 15년 선배다. 김 실장이 검찰총장 시절 안 후보자는 평검사에 불과했던 까마득한 후배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검찰 문화의 특성상 안 후보자가 김 실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회의적이란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통령제 하에서 책임총리제가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며 “김 실장 유임에서 보듯 박 대통령이 실제 그런 의지가 있는지는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의 수장이 모두 강성 검사 출신으로 짜여진 점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안 후보자가 공직적폐 척결의 아이콘으로서는 긍정적이지만 세월호 참사로 빚어진 민심 이반의 한 요소가‘앵그리 맘’으로 대변하는 여성 민심인 것을 감안하면, 김 실장의 유임으로 안 후보자 카드의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김 실장(경남 거제)과 안 후보자(경남 하동) 모두 PK 출신이다. 가뜩이나 PK 출신이 정부 요직을 차지한 상황에서 공교롭게 부산 출신인 정의화 새누리당 의원이 22일 국회의장에 당선돼 지역 편중 논란이 더 거세지게 됐다. 김 실장을 교체 대상 1순위로 꼽아왔던 야권에게 더 없이 좋은 공세 포인트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날 김 실장 유임을 고리로 박 대통령의 인적 쇄신안에 대해 이틀째 맹공을 퍼부었다.
세월호 참사 초기 대응과정에 청와대의 역할이 무기력했던 점을 감안하면 청와대 책임론의 정점에 있는 김 실장의 유임은 ‘책임 정치’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여권에선 “내각의 대폭 교체로 국정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김 실장까지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박 대통령이 쏟아낸 고강도의 쇄신책이 흐려질 수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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