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은 대중이란 단어의 뜻을 ‘수많은 사람의 무리’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대중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건 쉽지 않다. 월드컵 때마다 광장을 채우는 사람들, 정권의 잘못을 따지기 위해 촛불을 들고 모인 사람들…. 이 책은 대중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한국 대중 실천의 100년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고찰한다.
대중은 근대의 산물이다. 산업이 발전하고 대도시가 형성됨에 따라 영주와 농노의 신분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약제로 바뀌었고,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내던 시골의 공동체와 달리 대도시에선 익명으로 사는 게 가능해졌다. 도시에선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바뀌었다. 과거엔 신이 세상의 중심이었지만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이 퍼져나갔다. 그렇게 모인 익명의 다수가 곧 대중이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근대적 대중은 해체하기 시작했다. 근대적 이성과 주체에 대한 비판이 진행됐고, 생산성에 집중하던 경제는 지식, 정보, 서비스, 소통, 감성 등이 중요시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탈근대적 대중은 근대의 대중과 여러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현대의 대중은 개방적이고 다층적인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생성한다. 탈근대적 대중은 평면적이고 이성 중심적이었던 근대의 대중과 달리 감성 중심적이고 이중적ㆍ모순적이며 다층적이다.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서 미국을 비판하고 좌파 성향을 보이면서도 부동산 투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현대의 대중이다.
저자는 우리의 근대적 대중이 어떻게 탄생하고 탈근대적 대중으로 변화해왔는지 고찰하기 위해 서구적 패턴을 지향하던 모던 걸과 모던 보이의 탄생부터 동학농민전쟁과 만민공동회, 3ㆍ1운동 등의 저항하는 대중,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 정권 시기의 대중, 그리고 민주화와 세계화, 디지털화 시기의 대중까지 긴 역사를 살핀다.
현대의 대중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이어진 궤적을 통해 자율적인 자기 결정의 주체로서 국가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저항 주체로 나서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국가 부도사태를 겪은 대중은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주체로 나섰지만 신자유주의 전횡 속의 삶은 피폐하기만 하다. 고용은 불안해졌고 기회의 불평등은 심화됐으며 삶의 지속을 위해 생활의 모든 부문에서 개인이 수행 주체가 돼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이 시기에 등장한 디지털 신인류는 사이버 공간뿐만 아니라 실제 세상에서도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책이 깊게 파고드는 건 2002년 이후 벌어진 한국 사회의 대중 실천이다. 오노 사건, 노사모 활동, 길거리 응원전 그리고 미선이 효선이 사건과 이라크전 파병 반대, 대통령 탄핵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과 관련해 촛불집회에 참여한 대중을 살피며 저자는 참여적 군중이 “새로운 사회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체제의 근본 모순을 파헤치고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촛불집회가 정치와 문화가 결합한 문화정치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거리로 나온 대중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순과 억압 구조를 드러냈고 이런 움직임은 바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중 연구가 대중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과 미래 전망까지 탐구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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