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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두 번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건, 내가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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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두 번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건, 내가 사는 것

입력
2014.05.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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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아래)와 2008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팻 카바나. 반스는 그리운 아내를 두고 "과거와 현재 사이 어딘가의 시제에 속하는 과거적 현재형"이라고 썼다. 다산책방 제공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아래)와 2008년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팻 카바나. 반스는 그리운 아내를 두고 "과거와 현재 사이 어딘가의 시제에 속하는 과거적 현재형"이라고 썼다. 다산책방 제공

이별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원인에 따라 분류할 수도,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이별은 압도적이고도 확정적인 하나의 이별 앞에서 언어를 잃는다. 사별. 실존을 소거함으로써 이별을 완료시제로 종결해버리는 가공할 사건, 죽음. 무엇을 어찌해볼 도리조차 이제는 없다. 그러므로 사별은 어떤 이별과도 다르며, 어떤 이별보다도 절망적이다.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영국의 대표적 소설가 줄리언 반스(68)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30년간 삶의 동반자이자 지지자였던 아내를 잃고 쓴 사별의 기록이다. 하지만 단순히 에세이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장르를 특정하기가 애매한 이 책은, 그 역시 50년간 해로했던 남편을 잃은 경험이 있는 미국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표현을 빌자면, “에세이와 우화 그리고 사색의 정교하면서도 감동적인 결합”이다. 통절한 슬픔의 열거 대신 침묵의 응시와 내면의 분석이, 치열한 조망과 반추를 통해 추출해낸 삶의 의미가 이 책엔 있다.

반스의 아내 팻 카바나는 2008년 뇌종양으로 발병 37일 만에 사망했다. 이 급작스런 죽음은 영국 유수의 매체에 일제히 보도됐다. 미모와 카리스마가 넘쳤던 그는 유명 작가의 아내이기 이전에 출판업자들에 맞서 작가들을 대변했던 문학 에이전트이자 문단 사교계의 별이었고, 뛰어난 문학적 감식안으로 수많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한 영국 문단의 전설적 인물이었다. 그 자체로 사회적 사건이었던 아내의 죽음 이후 반스는 철저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았고, 아내에 관한 글은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아내의 죽음으로부터 정확히 4년 후, 그는 이 책을 내놓는다.

책은 동일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3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다. ‘인생의 층위들(Levels of Life)’이라는 원제에 걸맞게 1부에서는 창공, 2부에서는 지상, 3부에서는 지하에서의 사랑을 그린다. ‘비상의 죄’라는 제목을 붙인 1부의 주인공은 19세기 후반 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며 처음으로 창공에서 지상의 사진을 찍었던 실존인물 나다르.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멀리 떨어진 채 우리 자신을 바라본, 주체가 순식간에 객체가 되는 순간의 심리적 충격을 안겨준 인물”이었다. 건조한 역사서술의 문체로 그려내는 이 비상의 약사(略史)는 비상이 필연적으로 몰락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사랑의 메타포가 된다. 황홀한 비상의 상태를 통해 사랑에 빠진 이는 타자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거리를 확보하게 된다.

2부 ‘평지에서’는 동일 시기 기구 비행에 열광했던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와 영국 군인 프레드 버나비의 허구적 러브 스토리를 그린다. ‘사랑하다’를 순간의 동작동사로 받아들이는 여자와 지속의 상태동사로 이해하는 남자의 불가피한 엇갈림을 그리면서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랑이 진실과 마법의 접점이기 때문이다. 사진에서의 진실, 기구 비행에서의 마법처럼.”

3부 ‘깊이의 상실’에 이르면 1, 2부가 결국은 반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도입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1인칭으로 등장한 반스는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하나의 죽음은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죽음에는 한줄기 빛조차 비추지 못한다’는 E. M. 포스터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별 이후에 찾아 오는 비탄의 감정은 상상불가능할 뿐 아니라 절대로 미리 대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휘몰아친 아내의 죽음이라는 횡포한 사건은 “그냥 우주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무신론자인 그는 “그리움의 아수라장 속에서” 적는다. “나에겐 우리가 물질을 초월한 형태로 다시 만나리라는 믿음도 없다. 죽은 건 죽은 거라고 나는 믿는다.”

무심한 우주에 대한 분노는 강렬한 자살 충동으로 이어진다. “욕조와 일본 칼”. 그러나 그는 아내를 기억하는 가장 주된 사람이므로 그의 죽음은 아내의 두 번째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그는 현대의 오르페우스가 되어 다른 방법으로 아래로 내려가, 다른 방법으로 아내를 다시 데려와야 한다. “꿈 속에서는 아직까지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기억 속에서도 우리는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아직도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아직 잊지 않았기 때문”이며, 부재를 견뎌낼 수 있었다면 기억을 통해 사라져버린 “실재를 이 삶 속에 품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억이라는 행위를 통해 사랑하는 이를 불멸케 할 수 있다. “흰 대리석이 아닌, 종이로 지은 타지마할.” 영국 옵서버지의 평가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ㆍ최세희 옮김, 다산책방 발행ㆍ208쪽ㆍ1만2,800원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ㆍ최세희 옮김, 다산책방 발행ㆍ208쪽ㆍ1만2,800원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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