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전 대통령과 사시 동기
25세 검사 '최연소'
지난 대선 때 朴캠프 참여
총리의 장관제청권 등
정치쇄신 공약 주도
한광옥 영입싸고 朴과 대립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는 2003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불법 대선자금을 파헤친 이른바 ‘차떼기 수사’를 통해 명성을 얻었다. 이어 대법관을 거치면서 원칙과 소신, 강단을 갖춘 그의 이미지는 국민들에게 더욱 강렬하게 각인됐다.
이 같은 이력을 바탕으로 지난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해 정치쇄신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당시 비리 전력이 있는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 영입 문제로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총리로서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안 전 대법관은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지난 2003년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차떼기 대선자금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차떼기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은 천막당사로 대변되는 '박근혜 체제'로 전환해 당 쇄신을 이끌어냈다. 안 전 대법관도 당시 불법 대선자금수사를 통해 검찰에 대한 최초의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2012년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에는 잠시 변호사 활동을 하던 안 전 대법관은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다. '차떼기 수사' 10년이 채 안 돼 박근혜 대선 후보의 러브 콜을 받아 새누리당에 몸담았던 안 전 대법관은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2004년 당시에 못지 않은 정치쇄신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관피아' 문제점 등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척결한 적임자로 안 전 대법관을 지목한 것이다. 안 전 대법관은 다소 깐깐하다는 인상과는 달리 정이 많고 따뜻한 마음 씀씀이로 조직 안팎의 신뢰가 투텁다는 평이며, 박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안 전 대법관은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지난 2003년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차떼기 대선자금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차떼기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은 천막당사로 대변되는 '박근혜 체제'로 전환해 당 쇄신을 이끌어냈다. 안 전 대법관도 당시 불법 대선자금수사를 통해 검찰에 대한 최초의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2012년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에는 잠시 변호사 활동을 하던 안 전 대법관은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다. '차떼기 수사' 10년이 채 안 돼 박근혜 대선 후보의 러브 콜을 받아 새누리당에 몸담았던 안 전 대법관은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2004년 당시에 못지 않은 정치쇄신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관피아' 문제점 등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척결한 적임자로 안 전 대법관을 지목한 것이다. 안 전 대법관은 다소 깐깐하다는 인상과는 달리 정이 많고 따뜻한 마음 씀씀이로 조직 안팎의 신뢰가 투텁다는 평이며, 박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안 전 대법관은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지난 2003년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차떼기 대선자금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차떼기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은 천막당사로 대변되는 '박근혜 체제'로 전환해 당 쇄신을 이끌어냈다. 안 전 대법관도 당시 불법 대선자금수사를 통해 검찰에 대한 최초의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2012년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에는 잠시 변호사 활동을 하던 안 전 대법관은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다. '차떼기 수사' 10년이 채 안 돼 박근혜 대선 후보의 러브 콜을 받아 새누리당에 몸담았던 안 전 대법관은 이번에도 다시 한 번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그만큼 박 대통령이 2004년 당시에 못지 않은 정치쇄신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월호 사건으로 드러난 '관피아' 문제점 등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을 척결한 적임자로 안 전 대법관을 지목한 것이다. 안 전 대법관은 다소 깐깐하다는 인상과는 달리 정이 많고 따뜻한 마음 씀씀이로 조직 안팎의 신뢰가 투텁다는 평이며, 박대통령에게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안 후보자는 최연소 검사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다. 서울대 법대 3학년이던 만 20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연수원과 육군 법무관을 마친 뒤 25세에 검사로 임용되면서 대학을 중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정상명 전 검찰총장 등과 사법시험 17회 동기다.
안 후보자는 서울지검에서 첫발을 뗀 이후 검사생활 대부분을 특별수사에 몸담았다. 서울지검 특수부장 당시 서울시 버스회사 비리, 대형 입시학원 비리 등 굵직한 사건을 처리했고, 인천지검 특수부장 때는 바다모래 불법채취 사건을 파헤쳐 이름을 날렸다.
2003년 대검 중수부장을 맡으면서 안 후보자는 ‘특수통’ 검사의 대명사로 부각됐다.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 재수사에 이어 SK 비자금 사건을 처리했다. 특히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야당인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대통령 측근과 집권 여당까지 파고들었다. 안 후보자는 이 수사를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 검찰 조직의 위상을 바로잡는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국민검사’로 불리며 대중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인터넷 팬클럽이 생길 정도였다.
안 후보자는 2005년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후임 인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2006년 대법관에 발탁됐다. 2012년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에는 잠시 변호사 활동을 하다 대선과정에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다. 이때 ▦총리의 장관 제청권 ▦장관의 인사권 보장 ▦특별감찰관제 ▦상설특검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등 정치쇄신을 위한 대선공약을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 2기 내각에서 책임 총리제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안 후보자는 대선 이후 용산에 변호사 사무실을 내고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국세청 세무조사감독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해왔다. 최근 남산의 신축 대형아파트로 이사하기까지 서대문구 홍은동의 아파트에서 25년 넘게 살아온 점이 회자되기도 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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