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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 데이트 폭력... 출동한 경찰 건성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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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 데이트 폭력... 출동한 경찰 건성건성"

입력
2014.05.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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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2014-05-22(한국일보)
데이트 폭력/2014-05-22(한국일보)

주민들 수차례 신고에도 피해자 상태도 확인 않고 가해자 귀가 조치

"고소 없으면 수사 어려워" 소극적 대응 논란

서울 주택가 한복판에서 남성이 여자친구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는데도 경찰이 ‘남녀 문제’라며 수사를 외면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피해자의 상태조차 확인하지 않고 귀가시켰고, 목격자가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피해자 고소가 있어야 한다”며 수사를 회피했다.

한국일보가 확보한 동영상에 따르면 사고가 일어난 것은 16일 오후 11시 30분 서울 은평구의 주택가에서였다. 20대 남성이 또래 여성의 얼굴을 수 차례 무릎으로 가격하고 주먹으로 온몸을 난타했다. 여성이 쓰러지자 남성은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으슥한 곳으로 10여m를 끌고 갔다.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자 머리를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아스팔트 바닥에 찧었다. 여성이 기절한 듯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폭행은 이어졌다. 이번에는 발로 여성의 얼굴과 복부를 걷어찼다. 20분 가까이 이어진 폭행에 아스팔트에는 여성의 피가 뚝뚝 떨어졌다.

보다 못한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50여m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본 A(54)씨는 “‘저러다 사람 죽겠다’며 옆에 있던 70대 남성과 50대 여성이 잇따라 112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의 초동 조치는 허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부경찰서 지구대 경찰관은 피해자의 상태도 확인하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시끄럽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만 하고는 돌아갔다.

경찰의 어이없는 행동을 본 B씨가 다시 신고하자 경찰관은 “도착 당시 남녀가 화해 분위기여서 치정에 얽힌 단순폭행으로 보고 귀가시켰다”며 현장에 돌아왔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이미 그 곳을 떠난 뒤였다. B씨가 피로 얼룩진 현장을 보여주고 폭행 사실을 상세히 설명하자 경찰은 “그 정도인 줄 몰랐다. 더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한 일은 남성이 타고 온 차량의 차적 조회가 전부였다. 경찰은 “차 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철수해버렸다.

후속 조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1시 B씨가 사건을 서부경찰서 형사과에 고발하자 담당 형사는 “이런 사건은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으면 수사하기 어렵다”고 했다. 신체를 훼손하는 상해는 단순폭행과는 달리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 없이 경찰이 입건해 수사해야 하지만 고발 접수조차 꺼린 것이다. B씨가 “증거가 명백하고 증인도 있는데 왜 수사가 어렵냐”고 따진 후에야 형사는 “수사해 보겠다”고 말했다.

탐문으로 가해자의 집을 확인한 형사는 B씨에게 “둘은 동거하고 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 수사가 어렵다. 함께 사는 가해자의 어머니에게 폭행 사실을 알리고 재발 방지를 부탁했다”고 통보했다. 이 형사는 “선생님처럼 정의로운 분들이 있어 다행”이라며 “청문감사관실에서 전화가 오면 좋게 말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 경찰서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여성이 많이 맞기는 했지만 상처는 크지 않아 상해죄를 적용할 정도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경찰의 미흡한 대응에 시민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B씨는 “데이트폭력, 가정폭력이 계속 일어나는데 경찰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방치했다가 큰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장은 “어떤 폭력도 허용해선 안될 경찰이 유독 남녀문제는 개인적이고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면서 “데이트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신고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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