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4)씨는 알코올 중독 등으로 가족이 요청해 2012년 12월부터 172일간 서울의 A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퇴원 당일 김씨는 구급차에 실려 서울의 B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B정신병원에서 179일을 보내고 퇴원한 김씨를 기다리는 것은 다름아닌 A정신병원으로 돌아가는 구급차였다. 그렇게 김씨는 290일간 ‘회전문’ 입원을 했다.
정신보건법은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는 비자의(非自意) 입원의 경우 보호자 2명의 동의와 주치의 1명의 진단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6개월을 넘겨 계속 입원시키려면 시군구 등 지방자치단체에 신청해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위원회는 정신과 전문의, 판검사나 변호사, 환자 가족 등 5~15명으로 구성된다. 이런 심사를 피하기 위해 6개월이 되기 전 병원을 옮기는 편법을 동원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김씨의 동의도 없이 번갈아 장기 입원시킨 두 병원의 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22일 밝혔다. 인권위는 병원들이 심사를 회피할 목적이라는 것을 알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고발을 결정했다. 인권위는 더불어 입원기간을 준수하지 않거나 계속 입원 심사를 회피하는 일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다만 정신병원 장기 입원이 알코올 중독인 가정폭력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격리시킬 목적으로 이용될 경우에 대한 예외 규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인권위는 보고 있다. 김원영 인권위 조사관은 “이런 경우 입원 기간이나 방법 등을 사법기관이 관리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조사관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병원에 맡기는 사례도 적지 않은데, 입원이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없다”면서 “이런 사례에 대해서는 사회복지기관이 환자를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정신병원 비자의 입원율은 2012년 기준 75.9%로 20% 정도인 유럽연합(EU), 미국 등보다 월등히 높다. 인권위는 정신보건법 등 관련 제도가 정신장애인 인권 보호에 충분하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고 올해 3월 관련 전문가로 ‘정신장애인 인권포럼’을 구성해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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