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 봄날 오후 산책을 다녀왔다. 정부와 대통령에게 분노한 사람들이 시내 광장에 모여들고 있다는데 나는 정신의 금치산자가 되어 한가하게 ‘산책이나’ 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광장과 지하철역, 공연장과 터미널과 역 대합실에 가득 찬 사람들을 떠올리면 숨이 턱 막힌다. 내가 교회를 고2때 떠난 것도 신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신도들의 군중적 속성에 염증을 느낀 탓도 있다. 깊이 애도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울광장 노제에 가지 않은 것도, 야구를 좋아하면서도 야구장을 잘 찾지 않는 것도 모두 군중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나는 홀홀함 속에서 비로소 삶을 각성할 수 있다. 내 몸의 호르몬과 세포 속에 그런 성질이 각인돼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도 부조리한 현실과 부패한 권력과 기성세대의 위선에 분노한다. 그리고 비판하고 경멸한다. 좀 진부하지만 이때 나의 표현수단은 문학이다. 내게 문학은 대나무 같은 것이다. 대나무는 쓰임에 따라 붓대가 되기도 하고 창이 되기도 한다. 나는 붓의 언어가 필요할 땐 붓의 언어를, 창의 언어가 필요할 땐 창의 언어를 구사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저항이고 나의 태도이다. 그리고 손에 대나무를 잡고 있지 않을 때는 최대한 홀로 자유로울 것이다. 상상 이상을 상상하고 내가 찾는 아름다움에 탐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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