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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세월호, 원전

입력
2014.05.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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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여행가

세월호 때문에 봄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한 달을 보냈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여름이 훌쩍 다가온 것 같다. 어느새 거리에는 반소매에 맨발인 이들이 넘친다.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는데 에어컨 없이 살겠다는 다짐을 올해도 지킬 수 있을까? 옥상에 텃밭을 가꾸고 몇 그루 나무도 심었지만 해마다 올라가는 온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나 하나 에어컨을 쓰지 않고, 자동차를 사지 않고, 가능한 채식을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는 건 어린 조카들 때문이다.

운이 좋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구의 아름다운 얼굴을 무수히 만났다. 하지만 내 조카들도 내가 본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기후변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친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12월 31일에 태어났다. 그런 인간이 이윤에 눈멀어 지구를 무서운 속도로 황폐화시키고 있다. 한 마디로 아이들의 시간을 우리 어른들이 마구잡이로 잡아당겨 쓰고 있다. 아이들이 누려야 할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 아이들이 헤엄치며 뛰어놀 강과 바다를 다 돈으로 바꿔서 제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다. 도대체 우리가 세월호의 선장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지구가 세월호 같다. 지구 전체가 가라앉고 있는데, 이대로라면 곧 아이들이 죽어갈 텐데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다. 개발과 성장은 포기할 수 없으니 가만히 있으라 하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셈인가. 시애틀 추장이 했던 말처럼 세상의 마지막 나무가 베어지고, 마지막 강이 더럽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사라진 후에야 깨달을 것인가. 돈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날 수명을 다한 국내 최고령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원전 1호기의 재가동이 승인됐다. 대통령은 세월호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날, 원전 수출을 위해 아랍에미리트로 날아갔다. 세월호의 비극으로부터 대통령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고리와 월성 원전은 제2의 세월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윤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운행을 연장한 점도, ‘원전 마피아’라 불리는 이들이 담합해 불량부품으로 부실 공사를 했다는 점도, 괜찮을 거라는 안전 불감증마저도 세월호와 닮았다. 이웃 나라의 사고를 바로 옆에서 보고도 수명이 다한 원전을 가동하고, 원전 기술을 수출하려 하다니 어떻게 이토록 무신경할 수 있을까. 재해에 대비한 안전시스템이 잘 갖춰졌다는 일본에서 터진 저 끔찍한 참사가 일본인들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모르는 걸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정기적으로 암 검사를 받는 천진한 유치원 아이들을 본 적도 없는 걸까. 직장 때문에 도시를 떠날 수 없다는 남편과 이혼을 불사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깨끗한 물과 공기를 찾아 이주한 젊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걸까. 일본뿐 아니라 이 땅의 엄마들마저 아이들의 밥상에 생선을 올리기 꺼린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걸까.

대통령과 주위의 참모들만을 탓할 수는 없다. 원전이나 환경 문제에 관한 한 우리 모두가 설마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삼십 년쯤의 세월이 흐른 후, 우리의 아이들에게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코끼리와 사자, 고래와 거북이는 동물원과 수족관에만 남았을 뿐이라고.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도, 아마존의 정글도, 탄자니아의 대초원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어째서 그렇게 된 거냐고 아이들이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답할까? 진정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돈에 대한 욕심을 억누르고, 편안하고 풍족한 삶에 대한 갈망을 줄여야만 한다. 더 이상 이 정부가 원자력 에너지의 불가피성을 설득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올여름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 선거에서 눈 부릅뜨고 후보를 고를 것이다. 이윤보다는 생명을 중시하는 후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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