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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전 유럽에서 열린 ‘전설의 9번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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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전 유럽에서 열린 ‘전설의 9번기’를 아시나요

입력
2014.05.2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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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전 네덜란드 바둑잡지에 실린 유종수(오른쪽)와 슐렘퍼의 9번기 대국 사진.
29년 전 네덜란드 바둑잡지에 실린 유종수(오른쪽)와 슐렘퍼의 9번기 대국 사진.

올 초부터 시작된 이세돌과 구리의 10번기가 전세계 바둑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한창 진행 중이다. 20세기 초반 일본에서 열렸던 우칭위안과 일본 정상급 기사들 간의 10번기를 70여년 만에 중국이 재현한 것이다. 그런데 29년 전 유럽에서도 한국과 유럽의 바둑고수가 유럽 최강자의 자존심이 걸린 9번 승부를 벌였던 사실이 최근 새롭게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1985년 10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국의 아마강자 유종수와 네덜란드 챔피언 로널드 슐렘퍼의 9번기가 바로 그 대회다.

한국외대 재학 시절 대표선수로 활약했던 유종수(60) 아마7단은 1982년 독일로 유학, 89년 귀국할 때까지 8년 동안 유럽 각국에서 열린 크고 작은 바둑대회에서 60여 차례 우승하면서 유럽 바둑계를 완전 평정, ‘유럽의 마이스터’로 불렸던 인물이다.

20세기 초반 일본 바둑계가 ‘타도 우칭위안’을 목표로 절치부심했던 것처럼 당시 유럽 바둑계도 유종수를 꺾을 강자를 고대했고 이때 등장한 도전자가 유럽 유일의 아마 7단이었던 네덜란드의 슐렘퍼였다. 네덜란드 굴지의 보험회사 인터폴리스가 9번기를 기획, 후원하겠다고 나서 1985년 10월 20일부터 27일까지 여간첩 마타하리의 고향인 네덜란드 리우바르덴에서 시작해 동부의 아른헴, 남부의 탈부르크까지 작지만 아름다운 도시 3군데를 순회하며 9판의 대국이 치러졌다.

이세돌-구리의 10번기와 달리 반드시 승부를 내자는 뜻에서 9번기로 한 것인데 결과가 너무 참담했다. 유종수가 7대2로 완승을 거뒀다. 이후 유럽에서 감히 유종수에게 도전하는 이가 없었고, 슐렘퍼는 패배의 충격으로 바둑계를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유럽 바둑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유종수-슐렘퍼 9번기는 아쉽게도 그동안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이세돌-구리 10번기가 개최되면서 몇몇 국내 바둑인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유종수-슐렘퍼 9번기 얘기가 나왔고 “한국인이 유럽 바둑계를 8년 동안이나 완전 석권했던 사실은 프로 아마를 떠나 세계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충분히 장식하고도 남는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네덜란드바둑협회 관계자와 접촉한 결과 다행히 당시 대국 기록과 사진, 기보 등 관련 자료들이 창고에 보관돼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9번기를 특집기사로 다룬 네덜란드 바둑잡지도 부쳐왔다.

“그때는 모두들 바둑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죠.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바둑 친구들이 9번기가 열리는 도시로 달려와 밤을 새워가며 함께 복기를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마침 오는 29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바둑대회가 열린다. 이에 맞춰 김원태 전 대학바둑연맹회장(킴엑스무역 대표)과 유종수 7단이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두 사람은 경기고와 한국외대 동기동창으로 재학시절 함께 대표선수로 활약했던 절친한 바둑 친구이자 필생의 라이벌이다. 대회 참가는 뒷전이고 당시 9번기의 행로를 되짚어 따라가 보는 게 주목적이다. 9번기가 열렸던 네덜란드 도시들과 유7단이 수학했던 독일 쾰른대에 들러 당시 바둑 친구들을 찾아보고 9번기와 관련된 기록들을 수집할 계획이다. 잊혀진 역사의 현장을 되짚어 찾아가는 감회어린 여정이다. 김대표가 친구의 전설적인 9번기를 그냥 역사 속에 묻히게 할 수 없다며 관련 경비 일체를 기꺼이 부담했고, 바둑칼럼니스트 이광구씨가 동행 취재해 ‘전설의 9번기’를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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