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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사라진 서울, 인간미 상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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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가 사라진 서울, 인간미 상실해"

입력
2014.05.2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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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 교수는 "아무리 기능적으로 완벽한 도시라도 우연성과 시적인 분위기를 갖추지 않았다면 살만한 곳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김성도 교수는 "아무리 기능적으로 완벽한 도시라도 우연성과 시적인 분위기를 갖추지 않았다면 살만한 곳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프랑스 파리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는 무언가가 있다.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것’에 끌려 설레고 추억을 만든다. 그렇지만 이들 도시의 기능성은 형편없다. 베네치아의 기반은 나날이 바다로 내려앉고 있으며 파리에서 화장실을 찾기란 센강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보다 어렵다. 반대로 두바이는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뾰족한 고층빌딩들이 상징하는 화려한 기능들로 똘똘 뭉쳐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없는 삭막한 두바이에서 쉽게 사연을 만들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것, 인간다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성도(51) 고려대 언어학과 교수가 도시 공간에 깃든 기호학적 의미와 이론을 모아 도시 인간학을 출간했다. 무려 984쪽에 달하는 이 책은 도시를 말하는 사상가 100여명의 계보를 담고 있어 도시 인간학이라 불리는 거대한 학문 세계에 대한 탐험 가이드북이라 할만하다. 한국 학계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기호학을 통해 도시 인간학의 틀을 세운 이 같은 시도는 찾기 어렵다. 김 교수는 “무엇이 파리와 베네치아처럼 인간다운 도시를 만드는지 규명해내고 도시라는 거대한 상징을 기호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학문의 프레임을 짜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2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도시를 기능주의로만 바라보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한 책”이라며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에 필요한 것들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책에서 도시를 “콘크리트, 강철, 유리로 이뤄진 물질세계인 동시에 우리의 지성과 심상 속에 또 하나의 둥지를 튼 생명체”라고 표현했다. “인간적인 도시에 대한 사유가 부족했다는 인식이 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인간적인 도시가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독특한 분위기와 심리적으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시(詩)적인 공간이어야 하고, 역사와 시간이 응축돼 만들어진 서사(敍事)와 생태적 토대여야 합니다. 이 책은 어째서 이들 세 요소가 인간적인 도시를 만드는데 필수적인지를 살피기 위해 도시의 상징과 역사, 사상의 의미를 학문적으로 펼쳐낸 결과물입니다.”

책은 도시 기호학의 이론적 주춧돌을 마련한 알기르다스 그레마스와 움베르트 에코를 비롯해 르 코르뷔지에,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인문사상가의 이론을 순차적으로 밟아간다. 집 짓기와 건축하기, 그리고 사는 것을 모두 하나로 보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거주론을 도구로 기능성에 집착한 현대 도시의 부당함을 지적한다. “두바이가 몰락하고 브라질리아와 캔버라 시민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지나친 기능주의 때문입니다. 도시를 기능에 따른 지구(zone)로 나눠 계획하는 스타일은 이미 실패했습니다. 신도시는 시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역사와 우연함이 없어 인간적이지 않아요. 기능을 위해 과거를 지우면 치매와 다름없어요. 도시가 치매에 걸리면 비극입니다. 서사가 사라진 서울은 인간적인 매력을 잃었다고 볼 수 있죠.”

책은 도시 인간학으로 향하는 디딤돌로 건축물과 인간 자체에 대한 사유를 풀어놓는다. “도시나 건축물 모두 예술품이 아닙니다. 사람이 들어가 살아야 하는 공간이죠. 공공 건물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공평히 열려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연간 2,000만명이 방문해서 문화를 자유롭게 즐기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는 사람에게 호혜를 베푸는 공간이라 말할 수 있고 당연히 인간적인 공간입니다. 이에 반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상업 공간으로 자리를 잡을까 우려됩니다. 돈을 쓰지 않으면 굶어가며 아이쇼핑을 해야 하는 (비인간적인) 공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이 책으로 도시 인간학의 프레임을 구축한 김 교수는 개별 도시 읽기에 착수할 계획이다. “책을 맺으며 강조하는 점을 하나 꼽으라면 공간에 대한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도시 인간학의 체계를 잡아놓았으니 서울 등 여러 도시에 대한 독법을 다룬 책을 쓸 차례인 것 같습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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