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받지 못했다. 칸영화제의 꽃이라 할 경쟁부문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미래는 있다.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도희야’(감독 정주리)가,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표적’(감독 창)이, 감독주간에 ‘끝까지 간다’(감독 김성훈)가 각각 초대됐다. 세 영화의 감독은 막 데뷔작을 만들었거나 두 번째 영화를 연출한 신진이다. 세 감독의 등장은 자본에 의해 획일화된 충무로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칸에서 세 사람을 최근 각각 만났다.
괴물 신인의 탄생, 정주리
22일 개봉하는 ‘도희야’의 정주리(34) 감독은 오랜 만에 등장한 걸출한 신인이다. ‘도희야’는 소재부터 파격적이다. 어촌으로 전출된 젊은 여성 파출소장 영남(배두나)과 양아버지로부터 학대 받는 여중생 도희(김새론)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중심에 놓고 한국 사회의 여러 부조리한 상황을 배치한다. 이주노동자와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건드리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고독과 선입견을 이야기한다. 인물들의 감정을 정교하게 포착하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이 돋보인다.
정 감독의 ‘입봉’(감독 데뷔)은 빠른 편이다. ‘도희야’ 시나리오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산학협력 과정의 장편영화 제작 공모 최종 심사에서 떨어졌는데 심사위원이었던 이창동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묻어버리기엔 아쉬운 시나리오니 함께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아” 제작을 하게 됐다.
‘도희야’는 원래 고양이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천진난만하기에 맹목적일 수 있는, 고양이 같은 아이 도희를 떠올리면서” 시나리오는 크게 바뀌었다. 정 감독은 “외로움을 통해 만난 두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엔 홍상수(‘하하하’) 김기덕(‘아리랑’) 봉준호(‘마더’) 나홍진(‘황해’) 윤종빈(‘용서 받지 못한 자’) 감독이 초청됐다. 모두 스타 감독이다. ‘도희야’의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상영만으로도 정 감독은 한국영화계가 주목해야 할 재목이 됐다. 정 감독은 “‘도희야’를 만들면서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다 생각했다”며 “상업적 영화는 지향하지 않겠지만 많은 관객이 보는 영화는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돌진하는 영화적 재미, 창
‘표적’의 창 감독은 이력이 좀 이채롭다. 뮤직비디오를 만들다가 충무로에 뛰어들었다. 데뷔작은 ‘고사: 피의 중간고사’(2008)다. 공포영화가 연달아 흥행에서 죽 쑤는 상황에서 예상 밖 흥행 성과(163만4,192명)를 일궜다. 한 비리 경찰의 음모에 맞선 특수부대원 출신 사나이와 둘의 대결에 연루된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표적’도 흥행(20일 기준 261만9,214명) 질주 중이다. 창 감독은 “칸영화제라는 영예로운 자리에 와보니 뮤직비디오 연출을 하다 영화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표적’은 프랑스영화 ‘포인트 블랭크’(2010)를 한국식으로 풀어낸 영화다. “다분히 기획영화라 볼 수 있는” 이 영화에 참여하면서 창 감독은 “원작의 긴박감을 충분히 살리되 버터 냄새는 제거하려 했다”고 말했다. 당초 창 감독은 스릴러 영화를 두 번째 장편영화로 준비했다. 알리바이를 충족하기 위해 모르는 사람들끼리 살인 대상자를 바꿔 범행을 저지르는 교환살인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창 감독은 “‘표적’처럼 중반에 큰 반전이 있는 등 닮은 점이 많은 영화였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안에 대한 집념과 돌파력에 대한 생각을 평소 많이 했는데 ‘표적’이 그런 영화였다”고도 했다.
장르영화를 연달아 만든 창 감독은 의외로 “(폴란드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와 (‘시네마 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영화처럼 ‘표적’ 속 인물들의 사연을 미스터리 풀어가듯 보여주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차기 작은 아담하고 작은 영화를 하고 싶다”며 “인간 관계를 다루고 싶은데 아마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충무로 놀라게 한 와신상담, 김성훈
아마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오랜 표어가 이 감독에게 맞을 듯하다. 데뷔작은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이었다. 호평을 얻지도, 돈을 벌지도 못한 영화였다. 김성훈(43) 감독은 데뷔작이 은퇴작이 되는 숱한 무명 감독 중의 한 명이 될 뻔했다.
‘끝까지 간다’는 김 감독의 영화 인생에 큰 반전이 될 듯하다. 영화는 비리 경찰의 음모에 옴짝달싹 못할 상황에 처한 한 형사의 고투를 매끄럽게 그려낸다. 꼼꼼하면서도 힘을 뺀 만듦새가 심상치 않다. 김 감독은 “6년 동안 고시 공부하듯 이 작품에 집중했다”며 “(어둠 속에서) 초 하나 들고 끝까지 가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칸영화제 현지에서 호평을 받고 흥행에 대한 전망도 밝은 데 김 감독은 “관객과 교감하며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첫 작품이 잘 되지 않아 많이 불안했다”면서 “세 번째 영화는 좀 더 잘 찍고 싶다”고도 말했다.
칸=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