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KBS 사장의 사퇴 거부에 노조가 총파업 찬반투표로 맞서면서 KBS는 방송국 전체가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태에 이르기 전부터 KBS 내부에서는 이미 공영방송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와 자조가 팽배했다.
7일 KBS 사내 게시판에는 입사 3년차 기자의 ‘침몰하고 있는 KBS의 저널리즘을 반성합니다’라는 글에 이어 38~40기 막내급 기자들의 반성문이 올라왔다. 정부 친위대 수준의 편향 보도, 대형 오보를 내놓고도 인정하지 않는 자세,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왜곡 보도에 대해 통렬한 반성이 줄을 이었다. 가장 먼저 반성문을 올린 사회부 38기 강나루 기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총회에서 “누구를 선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올렸다”며 “이런 식으로 있다가는 (KBS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조직이 되겠다는 참담한 심정으로 글을 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막내 기자들의 용기는 선배들의 자성으로 이어지면서 20일 오후 6시 현재 간부 256명이 보직을 사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MBC 보도국 30기 이하 기자 121명도 12일 보도국 뉴스게시판과 사내 자유발언대를 통해 ‘참담하고 부끄럽다’는 제목의 글로 세월호 보도 행태를 반성했다. 실종자 가족을 폄하하고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 한 보도로 국민에게 혼란을 야기한 점을 반성하는 글은 “해직과 정직, 업무 배제와 같은 폭압적 상황 속에서 MBC 뉴스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고발로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MBC의 한 PD는 “세월호 보도의 편파성을 따지자면 MBC가 KBS보다 훨씬 심했지만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폭탄 발언 때문에 묻힌 것뿐”이라며 “KBS 사태는 역으로 내부고발자 역할을 할 사람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인데 MBC는 장기파업 이후 그런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그는 “현재 MBC 보도국은 김장겸(보도국장), 이진숙(보도본부장) 등 친정부 인사들이 완전히 틀어쥐고 있어 사장조차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개혁을 기대할 수 있는 아래층 역시 파업 때 회사가 뽑은 시용기자들이 상당수라 내부 혁신에 대한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MBC의 한 기자는 “사측은 장기파업 당시 이미 파업에 대응하는 노하우를 완벽히 익혔다”며 “현 KBS 사태를 보며 가장 두려운 것은 MBC와 같은 전철을 밟을까 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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