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반갑다! 분노야

입력
2014.05.21 20:00
0 0

박은진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진료실에 한 고등학생이 찾아왔다. 고민이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마음 상태에 이미 이름을 붙이고 온 것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여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모든 것이 화가 나고, 화가 나면 참을 수가 없고 소리를 지르거나 주먹으로 벽이라도 쳐야 마음이 풀린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 상황이 너무 창피하기도 하고 기분을 조절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여 마음이 더 울적해지고 자괴감이 들어서 괴롭다고 하였다. 화를 없애는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였다. 이 아이의 분노가 어디에서 왔을까? 화를 없애는 것이 정말 마음의 평화를 가져올까?

많은 사람들이 “화가 난다”고 걱정하며 속마음을 풀어놓는다. 사실 필자도 요즘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감정이 화와 분노이다.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을 주로 상담하였지만 ‘분노’의 감정이 점점 대세가 된 것 같다. 사람들이 자신의 ‘화’를 풀어놓는 것을 듣고 이유를 찾고 방법을 연습해 가면서 나 자신의 ‘화’에 대해서도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화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느끼는 것조차도 두려워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다양한 패러디들이 더 공감을 이끌어낸다.

앵그리 버드라는 귀엽고 동그란, 화난 표정의 빨간 새가 통통한 돼지를 맞추는 게임이 한창 인기를 끌었다. 아이들이 재밌게 하고 있는 모습에 저런 간단한 게임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 단순하면서도 통쾌한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 시기에 개그콘서트에서 앵그리 버드 인형을 쓴 개그맨의 “화가 난다”는 말이 정말 시원하게 느껴졌었다. “그래 화가 난다.” 그런데 표현도 못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화가 난다”를 그냥 외치고 있구나. 그러니 그 말만 들어도 웃음이 나와서 내 안의 분노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못했던 말을 누군가가 시원하게 이야기해줄 때의 그 즐거움.

대체로 화, 분노는 나쁜 것으로 생각하고 화를 내지 않아야 성숙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돕는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분노란 매우 건강한 감정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의학적으로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다. 너무 억누르면 오히려 엉뚱한 모습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개인적 상황이든 사회적 상황이든, 화는 ‘정상적으로’ 생긴다. 화와 분노는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중히 해야 할 감정이다.

배우 차인표 씨의 ‘분노 시리즈’ 역시 화가 날 때 보면 즐거워졌다. 반듯한 이미지의 배우가 화와 분노를 행동으로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화를 조절하기 위해 분노의 양치질을 하고 푸쉬업을 하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주었고,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박장대소하였다. 양치질을 전투적으로 하고 푸쉬업을 하며 근육이 울퉁거리는 모습에서 분노란 이렇게 가까이, 이렇게 재밌는 모습으로 다가와 친근하고 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분노의 감정이란 무엇일까? 아직도 우리는 화를 내는 것이 성숙하지 못하거나 점잖지 못하다는 생각에 분노를 표현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분노를 조절하기 위한 특별한 치료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져 있을 정도니 말이다.

분노는 신호이다. 정당한 분노에는 에너지가 있다. 감정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프로그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분노 조절이고, 그 첫 단계는 나의 분노와 화를 느끼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표현하고 내면의 분노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그다음 순서이다. 분노란 감정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내면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신호이고 변화를 위한 동력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의 화가 느껴진다면 “화가 난다”고 말하고 우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건강한 분노가 되기 위해서는 그 분노가 자신과 타인을 상처 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박은진 교수가 오늘부터 오피니언 면 ‘삶과 문화’의 새로운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현재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교수로 고양시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증진센터장과 교육부 정책중점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공동연구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