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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의 자화상

입력
2014.05.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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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최근 남과 북에선 일어나지 말아야 할 대형 안전사고가 일어났다. 남쪽의 세월호에 비견되는 참사가 북쪽에서도 일어났다. 평양시 평천구역 살림집건설장에서 23층 아파트가 붕괴돼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 시기 용천역 폭발사고 때처럼 외부세계가 알 수밖에 없는 대형사고의 경우에는 이를 공개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지난 13일에 발생한 사고를 17일에 구조와 수습을 끝낼 정도로 사건처리가 신속히 이뤄졌다. 과거 같으면 외부에 숨기고 조용히 넘어갈 사고였다.

그럼 왜 북한당국이 사고소식을 대내외에 공개하고 관련 책임자들로 하여금 평양시민들에게 사과하게 했을까. 무엇보다 김정은 제1비서의 통치스타일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은둔 통치’로 대표되는 김정일의 통치스타일과는 달리, 지금까지 나타난 김정은의 통치스타일은 공개성·투명성·신속성과 함께 ‘인민친화형’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광명성 3호를 발사할 때 외신기자들을 초청하여 이를 공개한 것, 놀이공원에서 김정은이 풀 뽑는 모습을 보도한 것, 장성택 처형과 관련한 내용을 노동신문에 공개한 것, 최고인민회의에서 식량문제 등 경제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시인한 것, 포병부대 훈련이 잘돼 있지 않다고 질책한 것, 김정일시대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전용기를 공개한 것, 김정은이 참관하는 단상에 자본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콜라로 보이는 음료가 놓여있는 것 등에서도 ‘김정은식 글라스노스트’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하면서 서구식 통치방식을 목격하고 자본주의를 체험한 것이 통치스타일로 나타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김정은이 사과를 지시하고 이를 공개한 의도를 파악해봐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과 함께 ‘인민생활향상’을 총적목표로 제시하고 ‘인민사랑의 정치’를 표방했다. 하지만 3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강화와 전통우방인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 등으로 인민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도자의 교체를 계기로 경제문제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던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형사고가 발생하자 지도부는 몹시 당황했을 것이다.

특히 김정은 정권의 핵심 지지층이 살고 있는 평양중심가에서 벌어진 아파트 붕괴사고란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평양이 아닌 지방에서 이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면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핵심계층이 등을 돌린다면 김정은 정권은 버텨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을 비롯해서 관련 당과 국가, 군대 책임자들이 모두 나와 사태를 수습하고 사과했다. 북한 언론은 이번 사고를 보고받은 김정은이 ‘너무도 가슴 아파 밤을 지세웠다’라고 하면서 ‘인민사랑의 정치’를 부각하려 한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북한 지도부도 인민의 눈치를 살펴야 할 정도로 북한주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완전히 준공되지 않은 아파트가 붕괴돼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부실공사와 함께 입주민들이 자기 기호나 취향에 맞게 스스로 인테리어공사를 하고 입주하기 때문이다. 평양의 고급아파트가 5만에서 8만 달러에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평양 인근 평성 등에서도 건설업자가 아파트나 주택을 지어 분양하는 등 사유화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토지 소유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지만, 건물에 대한 소유권은 개인이 가지는 부분적인 사유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남이나 북이나 정권이 안전과 민생을 챙기지 못하면 주민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나은 민생과 안전을 보장하려면 남북 사이의 갈등에서 발생하는 분단비용을 줄려야 한다. ‘군사국가’인 북한은 아파트건설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군대를 동원한다. 무너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그 많은 군사비를 사용하고도 세월호를 구조할 변변한 구조선 한 척도 출동시키지 못했다. 세계가 비웃을 분단체제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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