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한국 사람입니다. 남편은 날 짐승이라고 불러요. 어제도 오늘도 술을 먹은 남편이 말합니다. XXX아 너희 나라로 돌아가.”
‘세계인의 날’(Together Day)인 20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빌딩 국제회의장. 이날을 기념해 열린 ‘이주여성 폭력 예방 토론회’에 앞서 진행된 짤막한 연극에서 한 배우는 이주여성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한 대사로 표현했다. 실제 이주여성상담센터에 접수된 사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10분 분량 연극에서는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 시댁의 멸시와 한국문화 강요 등 이주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일상화된 차별이 조목조목 고발됐다. “세계인의 날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이주여성의 인권은 여전히 허울 좋은 바람에 불과하다”는 일침이었다.
뒤이은 토론회에서는 이주여성 인권 유린의 실태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이 이어졌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김이선 연구원은 최근 연구결과를 인용해 “여성 결혼 이민자중 17.5%가 배우자로부터 폭력이나 모욕적 언사, 생활비나 용돈을 주지 않는 등 경제적 학대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정부차원에서 다문화 정책이 대거 쏟아지고 있지만 가족 중심 정책이 대부분이라 상당수 이주여성들은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주 여성들을 보호할 법적 장치나 제도에 대한 제안도 이어졌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상업적 결혼 중개업,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가족주의 등 다양한 구조적 문제가 결합된 것이 이주민 여성 인권 문제”라면서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중앙정부, 지역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정미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도 “이주여성 개별 사례에 대한 개입과 지원이 보다 포괄적인 인권과 안전의 관점에서 재정립될 수 있도록 사회 차원의 압박이 필요하다”면서 “다문화 가족 정책이 여성 인권문제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1부 토론회에 이어 2부는 외국인주민 패널과 함께 다양한 이주민 이슈를 다루는 공감토크로 진행됐다.
조현옥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세계인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서울은 이주민들에게 편한 도시는 아닌 것 같다”면서 “외국인 여성들이 차별없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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