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매뉴얼이 아니라 훈련이 문제다
"안전 교과목 만든다" 법석
교육부 2년 만에 폐지
1000여명 타는 KTX
승무원 77% "안전교육 전무"
전 정부 매뉴얼 승계 안해
지난해 DMZ 내 산불 때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
2년 전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이제 학교현장에서 표준화된 재난 매뉴얼을 활용한 교육ㆍ훈련 여건이 조성됐다”고 크게 홍보했었다. “각종 대규모 재난과 재앙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ㆍ관리하기 위해 재난유형별 매뉴얼을 보급한다”며 보도자료도 냈다. 화재, 태풍ㆍ집중호우, 방사능 방재 등 유형별 교육매뉴얼 9종과 지진 대피, 지진해일 대피, 민방공 대피, 방사선 비상대피 등 4종의 훈련매뉴얼 홍보였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전체 2,924명의 학생 중 사망ㆍ실종자가 5명뿐이었던 가마이시시(市)의 ‘기적’이 평소 학교에서의 철저한 재난교육 덕분이었다는 설명과 함께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후 학교에서 교육이나 훈련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15년차인 경기의 한 고교 교사는 “교육부가 그런 매뉴얼을 만들어 학교에 보급했다는 얘기도 처음 듣거니와 매뉴얼을 본 적도 없고 관련한 연수나 교육도 없었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전 교과서까지 만들고 사장시킨 교육부
매뉴얼뿐 아니라 안전 교과도 있었다. 교육부는 2011년 과거의 교련 과목을 대체해 실용적인 안전교육을 강화하겠다며 ‘안전과 건강’이란 선택 교과를 신설했다. 4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국정 교과서도 만들었다. 지진 태풍 붕괴 폭발 등 여러 재난 상황에서의 대처법 등이 포함된 책이었다. 그러나 딱 2년 시행된 후 이 교과는 사라졌다.
‘안전과 건강’ 교과서 편찬위원장이었던 이명선 이화여대 교수(보건관리학)는 “실용 안전 교육을 하자는 취지에 동의해 흔쾌히 참여했지만 개발 과정에서 교과명이 처음 ‘안전과 생활’에서 보건 분야를 일부 섞은 ‘안전과 건강’으로 바뀌더니 시행 2년 뒤에는 교과 자체가 사장됐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자, 교육부는 부랴부랴 정책 연구를 발주해 학교 안전교육 표준안을 만들고 교육과정에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사고 직후에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정책을 만들었다가 흐지부지되는 일이 교육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안전 교과목을 없애지만 않았더라도 지금쯤 안전 교육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며 “교육부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TX 승무원 안전훈련도 ‘서류상’으로만
안전이 필수인 공공기관에서도 매뉴얼 따로 훈련 따로다. 철도노조가 KTX 승무원 조합원 194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열차 화재, 독가스 살포, 교량 위 비상정차 등 비상대응방법과 관련해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77.6%가 ‘없다’고 답했다. ‘신규자의 안전 조치 교육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도 ‘교육이 부족해 실제 비상대응이 어렵다’는 응답자가 95.4%에 이르렀다.
한 KTX 승무원은 “그간 안전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소화기조차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총 18량, 길이만 388m, 입석까지 1,000여명이 타는 KTX에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을 제외하면 안내 승무원은 단 두 명인데 평소 안전훈련도 안 하니 사고가 나면 세월호 이상의 참사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매뉴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열차 충돌ㆍ탈선 ▦열차 화재 ▦운행 중 열차내 폭발물 테러 ▦열차에서의 비상 대피 ▦건널목에서 자동차와 충돌 시 등 비상 상황별 조치를 안내한 ‘승무원 비상시 대응업무 매뉴얼’이 있지만, 이에 따른 훈련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김영준 철도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교육을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게 돼있어 코레일관광개발이 교육은 하지도 않으면서 한 것처럼 승무원들에게 서명만 받아 거짓 서류를 꾸몄다”고 말했다.
국가위기관리 매뉴얼도 ‘죽은 문서’
참여정부는 위기관리 표준매뉴얼 33개, 위기대응 실무매뉴얼 276개, 현장조치 행동매뉴얼 2,400여개 등 2,800여개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단계별로 재난 상황 별 부처의 역할 구분, 실제 부처 소속 기관 공무원들의 실무지침, 하위 지방자치단체의 현장조치 요령법을 정해뒀다. 이외에 7개의 별도 주요상황 매뉴얼도 있다. 매뉴얼에 없는 사고가 날 때 대응요령까지 정해 둔 것이다.
그러나 이후 정부로 승계되지 않았다. ‘비무장지대(DMZ) 내 산불대응 매뉴얼’이 대표적이다. 2005년 4월 강원 고성의 DMZ에서 났던 산불을 계기로, 북측에 우리 소방헬기 투입 의사 전달, 협조 요청 요령 등을 매뉴얼로 만들어둔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4월 고성에서 난 대규모 산불에 우리정부는 남측 철책 너머로 날아든 불씨만 끄며 전전긍긍했다. 불은 나흘 만에 비가 대신 꺼줬다. 류희인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위기관리센터장은 “지난 정부에서 매뉴얼을 제대로 계승하고 훈련을 했다면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소방방재청이 정의당 세월호침몰사고대책위원장인 정진후 의원에게 제출한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른 월별 훈련 현황’에 따르면, 올 4월까지 총 20회의 훈련 중 현장형은 단 2번뿐이었다. 나머지는 회의실에서 모여 하는 토의형이었다. 이런 훈련도 2012년에야 시작했다. 정진후 의원은 “안전행정부는 단계별 3,494개의 매뉴얼을 갖고 있지만 그저 보유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매뉴얼은 훈련을 통해 환경ㆍ기술ㆍ상황의 변수를 계속 반영, 개선해나가는 ‘미완의 문서’”라며 “훈련 없는 매뉴얼은 실효가 없다”고 지적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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