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관련 협회들 특히 촉각
"정치인이 공석 채울라" 우려
박근혜 대통령이 공직사회 개혁방안으로 관피아 척결을 제시하면서 당사자인 관료사회뿐 아니라 공기업들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졸지에 문제 기관으로 낙인 찍힌 것 같아 억울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이번 기회를 내부 출신이 수장에 오르는 전통을 확립할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기대감도 있다. 그러나 자칫 관피아가 비운 자리를 정치권 낙하산 인사가 채우게 될 것이라는 냉소 섞인 반응이 더 많다.
20일 금융권과 공기업들에 따르면 퇴직 관료 취업제한이 어느 기관까지 넓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의 ‘세월호 담화’대로 취업제한 기관을 3배로 늘린다면 유관 기관뿐만 아니라 웬만한 중견기업까지 포함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 해양수산부 산하 공기업 관계자는 “현재 취업제한 대상에서 빠진 공단, 조합 등이 포함되면 퇴직관료의 취업제한 대상 기관은 대통령이 제시한 세배 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생명ㆍ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등 금융관련 협회가 특히 긴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규제가 강한 금융업 특성 탓에 금융감독 기관 출신들이 회장 자리를 독차지해 왔지만, 이번 조치로 더 이상 이런 낙하산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협회는 정부의 위탁 사항에 대해 자율규제도 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금융분야 고위관료가 수장과 임원을 맡는 것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며 “대통령 담화로 개혁대상이 된 이상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수장이 공석 상태인 손해보험협회나 한국주택금융공사, 인천공항공사 등의 기관에서는 내부출신이 수장이 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개를 들고 있다. 주금공 고위 관계자는 “1월 서종대 사장이 사임한 후 기획재정부 출신 내정설도 돌았으나, 관피아 배제 움직임이 일면서 지금까지 사장이 임명되지 못하고 있다”며 “다수 직원들은 이번 기회에 주금공 사정을 잘 아는 내부 출신이 수장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료 내부에서는 불만이 끓고 있다. 퇴직 관료는 사실상 재취업하지 말라는 조치라는 것이다. 또 관료가 못 가면 결국 전문성이 떨어지는 정치인들이 그 자리를 채우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벌써부터 과거 관피아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정치인들이 속속들이 메우고 있다. 지난달 말 기술신용보증기금 신임 상임이사에는 강석진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 비서실장이 임명됐고,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한전KDN 감사에 문상옥 새누리당 광주남구당원협의회 위원장이, 서울보증보험 감사는 조동회 국민통합 총회장이 각각 차지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비판 받는 이유는 이를 통해 특정 집단이 부당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때문”이라며 “그런 점에서 관료 출신을 몰아낸 자리를 정치인 출신이 차지한다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지적했다. 공정한 추천위원회를 만들어 자격을 갖춘 민간 전문가가 선임될 수 있도록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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