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열의 볼링그린 다이어리 코치와 선수(1)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님과 스승님과 아버지는 한 몸과 같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특히 여기에서 강조한 것은 스승의 의미다.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 것이 예의이며 우리에게 스승은 임금과 같은 존재다.
야구선수들에게 스승이란 코치를 의미한다. 코치는 기술적인 지도와 정신적인 지도, 그리고 인성에 대해 가르친다. 하지만 우리에게 코치란 선수들의 기술을 극대화시켜 상급 학교나 상급 레벨에 진학시키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여기는 사람이다. 사실 코치는 선수들에게 스승의 의미보다는 ‘기술자’라는 인식이 더 강한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다. 게임에서 이기지 않고서는 결코 좋은 코치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추어나 프로나 똑같다.
코치로서 가장 큰 역할은 선수의 기량을 제대로 파악하여 선수와 서로 상의해서 가장 적합한 훈련을 하고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에서는 선수에게 가장 합리적인 포지션과 타순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는 코치에게 부여된 가장 강력한 권한이다. 그래서 이 부분이 선수를 관리할 수 있는 기본이 되며 지휘 수단이다.
하지만 코치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항상 코치가 선수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론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기량이 떨어져서 게임에 출전할 수 없는 선수들은 당연히 코치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며 코치의 지시에 절대 복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주전 선수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각 팀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선수는 감독이나 코치가 바뀐다고 게임에 출전 하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주축 선수들의 경우 코치가 선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코치를 선택한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라면 더욱더 본인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최고의 선수라 할 지라도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선수 스스로 관리하기도 하지만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럴 때 선수가 필요한 코치를 선택하게 되며, 그렇게 이루어진 관계는 기술적인 코칭과 정신적인 코칭 모두 큰 효과를 발휘한다. 몇몇 코치들은 선수들이 본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하소연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보통 한 팀에 여러 명의 코치가 있으며 코치가 선수들을 평가하듯이 선수들도 세밀하게 코치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아주 이기적이다. 최고의 선수를 목표로 삼은 이상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들만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코치를 택하는 것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코치와 선수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란 무엇일까?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코치는 지식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선수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면 쓸모 없는 지식인 것이다. 반대로 야구에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으면서 코치의 권위만 앞세워 강압적으로 선수들을 몰아 붙인다면 그것은 최악의 경우다. 그런 코치들에게 선수들은 겉으로는 지시에 잘 따르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또 한가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헌신적인 코치의 모습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코치 본인이나 가족은 돌보지 않으면서 오직 선수들만을 위해 움직이는 코치들은 집착을 갖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선수들을 구속하게 되며 선수들이 코치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반대로 선수들에게 더 큰 압박을 가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코치와 선수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 너무 가깝지도 않으며 멀지도 않은 관계가 되어야 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그 선수의 개인적인 특징이나 장ㆍ단점을 제대로 파악해서 슬럼프나 어려움을 겪을 때 같이 고민해서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하며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위로해 주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의 관계가 되면 ‘애증’의 관계로 변하기 때문에 자칫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한국과 미국 양쪽에서 코치 생활을 해본 결과 두 가지 모두 장ㆍ단점이 있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연습이나 경기 상황과 일반적인 사생활을 동일시하는 습관이 있는데 공과 사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연습 때는 선수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정확하게 나누어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사생활은 최대한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양쪽의 장점만을 취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평상시에는 우리가 가진 장점인 정을 바탕으로 하는 감성적인 방법으로 선수들을 대해 주고, 연습이나 게임 상황에는 선수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대해 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볼링그린 하이스쿨 코치ㆍ전 LG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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